제4집: 회복의 인연을 갖고 오신 예수 1958년 08월 03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65 Search Speeches

진리와 그 주인공- 대한 사명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은 어떠한 신앙자를 찾고 있는 가. 역사적인 인연과 시대적인 인연과 미래적인 인연을 대신하여 나와 관계를 맺어줄 수 있는 신앙자를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여러분은 자신의 가슴으로부터, 몸으로부터, 또는 생활로부터 스며들어오는 어떠한 무엇을 느끼고 있습니다. 즉, 우리는 오관을 통하여 무엇인가 느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오관의 감각을 통하여 마음의 세계를 격려할 수 있는 어떤 진리는 없을 것인가 하는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러한 진리는 오늘날 우리들의 생활환경과 하등의 관계가 없고 새로운 분야에서 출발한 진리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생활과 백퍼센트 부합시킬 수 있는 인연을 가진 진리인 것입니다. 오늘날 소망으로 바라던 이념을 잊어버리고 몽롱한 가운데 처하게 될 때, 즉 흑암의 장벽이 가로막혀 자기 마음의 중심을 헤아려 세울래야 세울 수 없는 입장에 놓여지게 될 때 필요한 진리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지금까지 역사노정에 나타나지 못했던, 미래를 꿰뚫어 가지고 과거를 연결시킬 수 있는 진리를 기필코 찾아야 되겠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여러분들은 자신의 어떠한 수고와 희생과 고난을 무릅쓰고라도 그러한 진리를 찾아 이 땅에 심어 놓아야 할 세계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있음을 명심해야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인연을 맺고온 한 사람이 있다는 이 말은 인류역사노정에 있어서 그야말로 복음 중의 복음입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오늘날 여러분은 예수가 주장하던 진리를 추구하여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 자신이 역사적인 인연, 또는 시대적인 복된 믿음의 인연을 갖추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심정을 통하여 흘러나오는 역사적인 인연에 하나된 자신이 되었습니까? 못되었다 할진대,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역사적인 노정을 계승하여 오늘날까지 인연맺어 나오던 그 인연을 범한 죄인인 것을 알고 무조건 머리 숙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 시대적인 인연을 대신 하여 복음의 말씀을 전하셨고 시대적인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 실천적인 노정을 걸으셨던 예수님의 30여 생애노정을 유린한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연을 통하여 소개하였던 그 복음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이런 인연을 알지 못하는 사람, 그는 빚 중의 큰 빚을 진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인연을 통한 예수 그리스도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기독교의 진리인데, 그 진리 앞에 오늘날 우리들은 빚진 사람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늘 앞에 예수가 나설 때까지는 4천년이라는 하나님의 수고가 있었고 하나님의 심정과 역사과정의 수많은 선조들의 피가 여기에 얼룩져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다시 한번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이 이념의 인연을 찾기를 고대하고 그 인연에 의한 자기의 위치를 찾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할진대, 전후좌우와 양 어깨에 짊어진 큰 빚의 무게를 여러분은 느껴 본 때가 있습니까? 천륜을 움직여 나가는 인연과 법도는 오늘날 이러한 분야에서 우리를 재촉하고 있으나 우리들은 나 하나를 중심한 개인적인 인연에 머물러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인연에만 머물러 산다면, 그리고 그 인연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여러분 앞에는 천정을 통한 심판이 기다릴 것입니다. 혹은 역사노정에서 순교한 수많은 선열들의 피가 호소할 것입니다. 그런 권내에서도 하늘을 대하여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었던 예수님의 심정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마음이 통할 수 있었고 역사과정에서 수고하신 아버지의 전체의 심정이 예수로 말미암아 위안받을 수 있었습니다. 또 예수 한분으로서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전체의 소망을 대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는 이와 같이 역사노정에 있어서 그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단 한분밖에 없는 어마어마한 존재였음을 그때 당시의 사람들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리하여 몰랐던 역사적인 서러움을 해원하고 영광과 기쁨의 모습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는 데 그 뜻이 반대로 슬픔의 모습으로, 십자가의 제단으로 나타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바라보셨던 아버지의 심정을 오늘날 여러분들이 무엇으로 해원해 드릴 것인가. 이것이 문제 중에 제일 큰 문제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왔다 간 이후 영적 복귀역사는 우리의 심령복귀의 노정에 있어서 뒤집혀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