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2집: 나는 누구인가 1977년 03월 13일, 미국 벨베디아수련소 Page #68 Search Speeches

용서받을 수 -" 죄를 지은 나

그런 내용을 하나님이 볼 때, '야, 이 녀석아, 미친 녀석아' 하겠나요? 또 여러분 어머니 아버지가 볼 때, '야, 이놈 미쳤다'고 하겠나요? 하나님이 볼 때 어떻게 생각하겠나요? 또, 입으로만 잘못했다 잘못했다 하는것 하고, 눈물을 흘리고 콧물을 흘리고 엉엉 울면서 잘못했다고 하는 것하고 어떤 것을 더 측은히 여기겠어요?「두번째요」

어떤 죄를 졌느냐? 생각해 보라는 거예요. 나는 누구냐 이거예요. 무슨 죄를 지었는지 다 알고 있다구요. 이상적 사람을 때려 죽였다는 거예요. 이상적 가정을 때려 죽였고 이상적 종족, 이상적 민족, 이상적 국가, 이상적 세계, 이상적 천국, 이상적 하나님까지도 전부 다 때려 죽였다 이거예요. 그 죄가 얼마나 큰 죄예요. 개인이 가정 하나만 깨뜨려도 그 죄가 크다고 하는데 우주와 하나님까지 몽땅 깨뜨려 버렸어요. 그것은 아이디얼(ideal;이상)이 아니예요. 그냥 그대로 죄악된 세상이예요.

아담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됐다는 거예요. 아담이 타락하지 않았으면 참된 남자요. 참된 가정의 주인이요, 참된 종족의 주인이요, 참된 나라의 주인이요, 참된 세계의 주인이요, 참된 하늘땅의 주인이 되는 것이었어요. 아담이 왕 중의 왕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이지요. 하나님의 실체예요. 그런데 하나님이 하나님 노릇을 못 하게 된 것도 타락 때문에 그렇게 됐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하나님 노릇을 못 하고 있다구요, 지금.

그래서 그 구원섭리 가운데 아벨을 죽인 역사, 아벨을 죽인 것이 누구냐 하면 여러분들이예요. 그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노아를 핍박해 가지고 고생시킨 것도 여러분이예요. 아브라함을 몰아내고 야곱을 고생시킨 것도 여러분이고, 모세를 고생시킨 것도, 전부 다 여러분이 한 거예요. 지금까지 선민 사상에 있어서 예수를 전부 반대했던 것도 여러분이예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도 여러분이라는 거예요.

그러면 그 예수는 누구냐? 이 우주에 왕 중의 참왕이요, 우주에 부모중에 참부모예요. 그러니 왕을 죽이고 부모를 죽인 죄를 졌으니 어느 누구도 죄인 아닌 사람이 없는 거예요. 한 분밖에 없는 참부모를 죽였고, 한 분밖에 없는 이 우주의 선의 왕을 죽였다 이거예요. 그 이상의 죄가 어디 있느냐는 거예요.

그렇게 해 놓고도 뻔뻔스럽게 '나는 하나님을 모릅니다, 기독교 예수를 모릅니다' 할 수 있어요?

보라구요. 나뭇가지에 칼이 꽃히면 그 뿌리에 꽃힌 것과 마찬가지 아니냐. 그래요, 안 그래요? 마찬가지라구요.

여러분이 뭘했다구요? 살인자예요, 살인자 아니예요?「살인자입니다」누구를 죽였다구요? 한 번밖에 나타나지 않은 참부모를 죽였고, 한 번밖에 나타나지 않은 참왕, 우주의 왕, 이 천지의 왕을 죽였다 이거예요. 그러니 이제 교수대로 나가야 돼요. 전부 다 지옥 가야 돼요. 그것을 느껴야 된다구요. (식구 중에서 흐느낌)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손을 볼 때 '이놈의 손이 죽였다, 이놈의 눈이 그랬다, 이놈의 다리가 그랬고….' 이와 같은 죄인이 속죄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내 팔이라도 자를 것이고 껍데기를 벗겨 내 손으로 죽여도 부족하다는 것을 느껴야 돼요. 내가 눈을 내뽑아서라도…. 그런 걸 느껴야 돼요. 용서받을 수 없는 '나' 라는 것을….

만물을 보기가 부끄럽고, 사람을 보기가 부끄럽고, 하나님 보기가 부끄럽고, 모든 것이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는 때를 여러분이 갖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여러분이 사실 그러한 자리에 섰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실감을 해야 돼요.

그런 자리에 봄날이 되어 새가 나를 보고 지저귀면, 그것을 보고 고마와하고 말이예요. 그런 마음이 돼야 된다구요. 풀 한 포기가 나를 보고 반겨 주는 그것을 고마와하고, 하나님이 나를 불러 주시면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표정으로 모든 것에 대해서 자기 자신을 잊을 수 있는, 그런 경지의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된다구요. 여러분이 부끄러워서 눈을 뜰 수 없고, 고개를 들 수 없고 생각할 수도 없는 그러한 부끄러운 경지에 들어가 가지고 이것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해방을 받을 수 있고, 용서받을 수 있는 경지로 비약해야만 부활이 되는 거예요. '하나님을 위해서 매맞을 곳이 있으면 날 보내 주소. 죽은 곳이 있으면 날 보내 주소' 할 수 있는, 스스로 감동의 마음이 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는 거라구요.

그러고 나서, 그러한 과정을 거치고 나서 천국을 가도 머리를 못 드는데…. 이제는 머리를 들어라 할 때, 비로소 들 수 있는 자신임을 발견해야 된다구요.

자, 그러한 경지와 오늘날 통일교회 사람과는 차이가 얼마나 있느냐? 이것은 현실적인 문제예요. 망상적인 것이 아니예요, 망상적이. 선생님은 그런 경지에서 나무하고 이야기하고, 물을 가지고도 그렇게 생각하고…. 전부 내가 자연을 좋아하는 것도 다 그런 논리예요. 선생님은 웃으며 사는 사람이 아니예요. 눈물로 사는 사람이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