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집: 창조와 우리들 1973년 07월 29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36 Search Speeches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을 부모로 모시" 자리로 돌아가" 것

'절대적인 하나님이 믿으시고 원리를 통하여 절대적인 실체를 실현시킨 것과 마찬가지로, 그 생명체의 실현과 더불어 사랑이 폭발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절대적인 신앙 밑에서 원리를 통하여 내 실체는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 되는 것이요, 영원한 아들이 되면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없는 것이다' 할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돼요. 그런 자리에 부딪쳐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 세계에 있어서는 확실한 가치관을 가져야 됩니다. 세계관을 넘어설 수 있는 가치관을 가져야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그 가치관의 중심을 하나님에게 두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장은 세계로 돌아가자, 이상세계로 돌아가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자는 거예요.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않으면 이상세계도 없는 것이요, 행복의 세계도 없는 것이요, 영원한 세계도 없는 것이요, 사랑의 세계도 없는 것입니다. 왜? 그 모든 행복의 요인, 우리가 소망하는 모든 요건들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시작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그리워하고, 이것을 찾아 나온 것이 인류 역사상에 나타난 종교라는 기관이다 하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창조 당시에 하나님 자신도 물론 알고 믿는 자리에 섰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 말씀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원리의 내용을 통해서 '이렇게 돼라'고 한 것입니다. 내용 없이 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원리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믿는 자리에서, 실현 가능한 입장에서 말씀을 통해서 '이렇게 되는 것이다'라고 한 거예요. 여기서 말씀하신 것은 실체를 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실체를 보게 될 때에 영원한 생명이 출발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출발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의 폭발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왜? 대상이 나타나게 되면 사랑은 반드시 발동하기 때문입니다. 주체가 있고 대상이 있게 되면 반드시 주고 받는 인연은 맺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완전한 플라스가 있으면 완전한 마이너스가 생겨서 하나되는 이치와 마찬가지의 내적인 인연이, 창조 당시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벌어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태어난 우리 인간은 당시 미숙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이었어요. 하나님의 사랑은 받지만 사랑을 알게 돼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이 자라는 성장기간은 어떠한 기간이냐? 완전한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되기 위한 훈련기간입니다. 완전한 사랑을 받게 하기 위한 훈련기간이다 이거예요.

그러면 그 기간에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이 좋아하도록 하나님이 가면 가고, 하나님이 오면 오고 그래야 됩니다. 세상에서도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 외에 아담과 해와밖에 없었다면 그 아담 해와가 누구와 생활했겠어요? 부모와 해야지요. 부모가 하는 대로 배우면 되는 거라구요. 교육이 필요 없는 것입니다. 부모가 하는 대로 하고, 부모가 아는 대로 알아 가고 부모가 행동하는 대로 따라 하고 부모가 좋아하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행복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외에 행복을 꿈꾸고, 그 외에 무엇을 행하게 되면 타락권이 지배하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따먹지 말라고 제재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거예요.

그러므로 우리 타락한 인간은 어떠한 관을 가져야 되느냐? 무한한 가치관을 가져야 됩니다. 오늘날 이 세계는 공산세계와 민주세계가 투쟁을 하고 있지만 맨 마지막엔 다 지칩니다. 우리 인간끼리 할 수 없다고 지칠 때가 점점 가까와오는 것입니다. 인간끼리 세계를 요리하게 돼 있지 않기 때문에 지치게 마련입니다.

그렇게 되면 통일교회의 때가 될는지 모릅니다. 지금 남북이 회담하고 있지만 국제무대에까지 나가면 점점 지칠 단계까지 가지 않겠느냐 하는것이 원리적인 관입니다. 그렇지만 지치는 가운데 생명력을 지녀 가지고 무한한 가치를 추구하고, 무한한 생명력과 결탁하고 무한한 사랑에 일치될 수 있는 무리가 있다면, 개인을 초월하고, 가정을 초월하고, 민족을 초월하고, 국가를 초월하고, 주의 사상을 초월해 가지고 등장하는 무리가 있다면 하나님은 그 무리를 신용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그 무리가 되어 보자고 하는 사람들이 통일교회 무리입니다.

그런 우리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냐? 아까 말한 대로 모든 생명은 전부가 대상적인 입장에서 하나님과 같이 출발했는데, 같이 출발할 수 있는 자리는 부자의 자리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을 찾아가야 하느냐? 무한한 가치 추구의 대상을 무엇으로 삼아야 하느냐? 참된 하나님을 모시는 자리에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부모로 모시는 자리로 돌아가자는 거예요.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되겠어요, 막연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재창조의 역사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원리적으로 재창조를 해야 됩니다. 원리적으로 재창조해야 된다구요. 무원리권의 흙덩이와 같은 인간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께서 흙덩이로 아담 해와를 창조하던 것과 마찬가지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되는 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말씀은 막연한 것이 아닙니다. 원리에 의한, 원칙을 통한 거예요. 사람의 눈은 이렇게 되고, 코는 이렇게 된다는 원리원칙, 설계도가 말씀인 것입니다. 그 설계도에 일치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됩니다. 그래야 될거 아니예요?

이러한 입장에서 고맙게도,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무엇을 제시하고 있느냐? 우리는 절대적인 가치관을 제시함과 더불어 참부모를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소망하는 절대적인 가치의 그 기준이 어디냐? 어디가 종착점이냐? 참부모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지닐 수 있고 영원한 사랑을 지닐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거예요. 그 외에는 길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아담 해와가 타락하게 될 때, 하나님이 허락한 자리에서 상대이상을 묶은 것이 아니거든요. 자기들 멋대로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해서 관계를 갖고 출발할 수 있는 것은 부자의 인연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깨졌으니, 몰락되었으니 그것을 표준하여 다시 꿰매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건 불가피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는 절대적인 가치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민주세계도 아니요, 공산세계도 아니요, 하나님께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막연한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입니다. 그런 하나님을 우리의 부모로 모실 수 있는, 새 생명의 기원에 새로이 봉착할 수 있는 그 자리가 타락한 인간이 희구해 나오던 희망봉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생명의 재현이 이루어져야 그와 더불어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행복이 출발되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지상천국이라는, 새로운 이상세계의 출현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계를 청산짓지 않고는 안 됩니다. 여기에 복잡한 내용이 있는 것을 청산지어야 합니다.

이러한 무원리권내에 떨어진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하냐? 하나님이 부여해 준 절대적인 대상의 가치를 찾아야 합니다. '세계를 주고도 바꿀 수 없고, 나라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나'라는 각성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자리가 우리 인간에게 부여된 대상의 자리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런 자리에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자리에 그냥 나갈 수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