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집: 우리의 책임 1971년 02월 14일, 한국 중구교회 Page #135 Search Speeches

선도 목적을 뚜렷이 세워 행해야

하루 생활에 있어서 사랑하는 아내가 회사면 회사에 출근하는 남편에게 오늘 재수가 있기를 바란다는 말을 하는데, 그 말을 중심삼고 볼 때 그 재수라는 것이 어떤 기준의 재수냐 이겁니다. 재수가 있기를 바라는 것은 어떠한 자리에서, 어떠한 인연을 중심삼고 재수가 있기를 바라느냐? 그 범위는 넓은 것입니다. 개인 개인끼리, 친구 친구끼리 만나서 서로서로가 서러운 것, 서로서로가 외로운 것, 서로서로가 미비한 것을 보충함으로써 기쁨을 느끼게 되어 재수있는 것이냐? 혹은 집이 곤궁하여 한 달 생활을 해결할 수 없는 자리에 있는데 이것이 해결됨으로써 재수있는 것이냐? 이런 것은 전부다 흘러가 버리는 재수입니다. 그것이 내 일생과 더불어, 부부가 공히 천년만년 기쁨으로서 지닐 수 있는 재수냐 하게 될 때, 이것은 심각한 문제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사랑하는 아내가 오늘 좋은 일이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면 그것이 무엇을 두고 한 말이냐? 흘려 버리는 입장에서 항시 하는 투로 말하였다면 그 말한 것이 당장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들 앞에 있어서 도움이 못 되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대한민국의 한 백성으로서, 혹은 대한민국의 한 가장으로서 재수가 있기를 바란다 할진대 어떤 자리에서 재수가 있기를 바랄것이냐? 높은 자리, 귀한 자리, 보다 가치있는 자리, 회사면 회사 전체에서 우러러볼 수 있는 자리, 회사를 넘어 나라가 찬양할 수 있는 자리, 어느 자리에서 재수가 있기를 바라느냐고 묻게 될 때, 어느누구를 막론하고 나라가 찬양할 수 있는 자리에서 자기 남편이 재수가 있기를 바란다고 대답은 쉽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문제 되는 것이 자기 남편이 나라를 위해서 충성하기를 그 아내가 진심으로 바라느냐 할 때, 안 바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공든 탑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속담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자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 자연의 법칙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 인생노정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겁니다. 선을 행하는 데 있어서 목적을 뚜렷이 세워 가지고 행해야만 그 목적하는 결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선을 행한다고 해서 오늘은 이렇게, 내일은 저렇게 목적이 왔다갔다하는 사람은 아무리 선행을 해서 기쁜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 기쁨은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거예요.

선행을 하되 한 나라면 한 나라를 중심삼고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 나라가 가야 할 길은 이런 길이다. 나라의 백성들은 이렇게 지도해야 된다'는 철두철미한 정신에 입각해서 삼천만 민족이면 삼천만 민족, 그 나라의 국토면 국토를 누구보다 더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정성들이는 자리에서 선행을 해야 됩니다. 그것은 오늘 해도 나라를 위한 것이요, 내일 해도 나라를 위한 것이요, 낮에 해도 나라를 위한 것이요, 밤에 해도 나라를 위한 것이 될 것입니다.

개개인이 가진 특성은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 개개인의 됨됨이도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저마다 바라는 인생의 목적도 똑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반드시 목적이 있어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가 존재하는 이상 그 목적을 반드시 이루려 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 목적하는 바의 가치가 그 사람에게 있어서 최고의 중심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도 사람이 완전하기를 바라고, 최고의 가치있는 자리에서 열매맺히기를 원하시지, 어떠한 환경의 영역으로부터 제재를 받아 미급한 자리에 서는 것을 원치 않으실 것이 아니냐? 완전무결한 하나의 결실을 바라는 하늘의 바램이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럴 수 있는 하나의 목표를 중심삼아 가지고 먹는 것도 그것을 위해 먹고, 사는 것도 그것을 위해 살고, 활동하는 것도 그것을 위해 활동하고, 좋아하는 것도 그것을 중심삼고 좋아하게 된다면, 한날의 기쁨은 자기의 생활과 더불어 흘러가는 기쁨이 되지 않고 영원한 기쁨으로 남아질 것입니다.

이러한 자리에서 슬픔을 만일 당한다면 그것은 나로 말미암아 당하는 슬픔이 아니라 뜻이 지향하는 자리에서 상충되어 당하는 슬픔이요, 그 슬픔의 동기는 내가 아니라 나라이기 때문에, 그 슬픔으로 인하여 내가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재차 결의할 수 있는 상대적인 자극이 되어 나타난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뜻을 품고 그 목적을 위해 정성들여 가는 생활 일체를 그 목적에 귀일시키고 일치시키고자 싸워 나가는 노정, 노력해 나가는 노정에 있어서 슬픔이 있다 하더라도 그 슬픔은 슬픔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슬픔을 통하여 내일의 희망과 내일의 새로운 목적을 촉진시키는 촉진제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그 슬픔을 내일의 희망과 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터전으로 소화시킬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