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집: 본향의 나라 1968년 03월 10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84 Search Speeches

본심의 기준과 본향

자기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인생인 것을 부끄럽게 느끼고 자인해야 합니다. 고로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모두 마음과 몸이 화합하지 못하는 한 그 집안은 망하고 비참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즉, 마음과 몸이 하나 되지 못한 개인들이 모여 가정을 이루었으니 화합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재미나게 살고 평온하고 뭐 어떻다고 할지라도 그런 가정은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연의 기준을 중심삼고 몸과 마음이 완전히 하나 되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형무소에 들어갔다 나왔다고 해서 그때마다 그 마음 기준이 깨지게 됩니까? 몇십 번을 그러했더라도 심정 기준은 깨지지 않습니다. 작용을 못할 뿐이지 깨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범죄의 회수에 비례하여 가중되는 내적 고충을 극복할 수 없어 몸부림치는 사람을 많이 보았습니다.

세계의 어떤 고난보다도. 어떤 환난 보다도 그 무슨 전쟁의 피해보다도 내 몸과 마음의 싸움으로 말미암아 생긴 피해가 더 크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패전으로 인한 산더미 같은 슬픔의 패잔물이 쌓여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몸과의 싸움에서 마음이 번번히 지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길 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것은 일년, 아니 일생 동안을 잊지 않고 '몇십 년 전에 여기서 내가 넘어져 다리가 부러졌었지' 하며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과 몸의 싸움으로 인하여 마음이 패한 것은 잊어버리고 생각지도 않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여러분이 아무리 큰소리를 친다 해도 그 자체는 패잔병의 팻말을 가지고 있는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래는 마음과 몸이 싸워 마음이 승리함으로 인하여 언제나 몸을 주관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못했기 때문에 마음과 몸이 제각기 다른 방향을 추구하게 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인격자라고 할 때에는 그 사람의 외모나 학벌, 경력 또는 지위를 보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얼마만큼 원리적인 입장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슨 외적으로 화려하고 다양한 것을 강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하늘을 섬기는 데 있어서 변함 없는 사람, 그런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생활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이 인격자인 것입니다.

옛날의 성현들이 가르쳐 준 것은 마음을 중심삼고 하늘을 공경하는 경천사상과 더불어 만민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늘을 사랑하고 땅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라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이 하늘과 접할 수 있는 백 퍼센트의 요소를 갖고 있느냐? 세계 인류와 접할 수 있는 백 퍼센트의 요소를 갖고 있느냐? 또한 땅을 사랑할 수 있는 백 퍼센트의 요소를 갖고 있느냐? 갖고 있습니까?

본심 자체를 분석해 보면 하늘을 사랑하고 땅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본연의 마음이 있습니다. 이 본심은 아무리 없애려고 애를 써도 자동적으로 생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본심이 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이상세계, 즉 본향의 나라, 본향의 세계를 추구하며 나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심작용은 나로 말미암아 시작되는 것입니다. '아무개' 하게 되면 그 사람의 간판만을 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을 확실히 알려면 그 사람의 마음을 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