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집: 현재의 통일식구 1971년 02월 13일, 한국 용산교회 Page #68 Search Speeches

성인의 가르침

우리가 성인이라 하게 되면 성인은 세계 사람들이 전부 추앙하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그래야 성인인 것입니다. 위인은 각 나라마다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위인 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이순신 장군을 들고 있지만, 위인이 훌륭한 것이 아닙니다. 이순신 장군을 좋아하는 사람은 대한민국 백성밖에 없습니다. 일본 사람은 이순신 장군을 싫어합니다. 그렇지요? 한 나라 국민들은 좋아하지만 한 나라 국민들은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참이라는 것은 이곳에서는 좋아하고 저곳에서는 싫어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볼 때에 이순신 장군도 세계 만민 앞에 내세울 수 있는 참된 사람이 못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한국의 순금이 미국 가서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것은 지역적인 한계에 따라서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국경을 초월하고 역사를 초월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입니다.

그러면 참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이순신 장군 같은 사람이 참된 사람입니까? 그는 대한민국 일개 국가를 중심삼고 충신이나 위인은 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성인은 못 되는 것입니다. 성인은 어떤 사람이냐 하면 세계적인 사람입니다. 성인은 민족을 초월합니다. 대한민국 사람도 좋아하고 일본 사람도 좋아합니다. 원수를 맺은 두 나라가 싸우고 있다가도 그 앞에서는 싸움을 그치고 무릎을 꿇고 경배하는 그런 자리에 서야 성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성인은 세계주의자입니다. 민족주의자는 성인이 못 됩니다. 세계주의자라야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르크스 같은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마르크스 같은 사람도 성인입니까? 마르크스는 성인 축에 못 들어갑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성인이란 인간을 위주해 가지고 나온 사람이 아닙니다. 인간을 위주한 주장을 하는 사람은 성인이 못 됩니다. 자기를 위주로 하여 가르치는 사람은 성인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성인들의 가르침이 뭐냐? 성인은 전부 종교를 내세웠습니다. 석가, 공자, 예수, 마호메트 등 성인의 자리에 올라간 사람들을 보면 전부다 종교의 교주들입니다. 그러면 소크라테스도 성인이냐? 소크라테스는 성인이 아닙니다. 왜냐? 소크라테스는 지혜의 왕은 될 수 있어도 성인은 못 되는 것입니다. 지식의 주인은 될지 모르지만 생명의 주인은 못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성인은 지식을 가르치는 주인이 아니라 생명의 도리를 가르치는 주인입니다. 생명을 좌우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나왔기 때문에 성인인 것입니다. 생사 문제는 사람이 관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관리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신이 관리한다는 것입니다. 신이 생사문제를 관리한다는 거예요. 생명의 문제는 신에게 속한 것이지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종교 지도자, 종교의 교주들이 지금까지 성인의 반열에 참여했는데, 그것은 어찌된 연고냐? 그들의 가르침이 자기를 위주한 가르침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공자면 공자가 자신을 위주하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석가면 석가도 자신을 위주하고 가르치지 않았고, 예수면 예수도 자신을 위주하고 가르치지 않았으며, 마호메트면 마호메트도 자신을 위주하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전부다 하늘을 위주하고 신을 중심삼고 가르쳤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가지지 않고는 성인이 못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인은 민족주의 관념권내예서 한 나라를 위주한 사람이 아니요, 한 나라를 위주로 하여 세계를 제패하고자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인간 위주한 도리를 중심삼고 세계를 제패하고자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고착된 하나의 민족을 결정지어 놓고 출발하는 그러한 도리로써는 성인이 못 되는 것입니다. 성인은 초민족적이고 초국가적입니다. 즉, 세계적입니다.

오늘날 마르크스주의니 무슨 주의니 하는 것은 하나의 철학입니다. 철학은 그 개인 아무개로 말미암아 시작되는 것입니다. 철학은 지식의 기원을 통해 가지고 나오는 것이지 신과의 관계, 생명의 기원을 통해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철학은 사람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놓고 탐구하는데 있어서 인성설을 주장했을는지 모르지만 생명의 기원은 어디서부터냐 하는 것을 추구하지는 못했습니다. 그 문제를 추구하는 것은 철학이 아니라 종교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교주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시작되는 가르침은 교주 자신들을 중심삼고 가르친 도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하늘을 위주로 해 가지고 가르친 도리입니다. 인간이 이러한 하늘의 법도에 따라서 살아야 된다는 내용의 가르침이 오늘날 세계 인류를 전부 포섭해 가지고 새로운 문화권을 형성해야 합니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위인은 일개 민족이나 국가권내에서 있을 수 있지만 성인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위인과 성인이 다른 것이 뭐냐? 위인이 죽을 때에는 그 나라 백성들이 비통해 하지만 성인이 죽을 때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성인의 자리에 섰던 사람들은 대다수가 '저 녀석은 나라를 팔아먹은 녀석이다'라는 비난을 들으면서, 나라 전체로부터 배반 당하고 나라 전체로부터 희롱당하는 자리에서 죽어 갔다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를 들어 본다면 예수님 같은 분을 유대교는 물론이요, 이스라엘 나라와 로마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죽음 길로 내몰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간 길은 천도를 따라서 간 길이요, 가치 없는 인생으로서 간 길이 아니라 숭고하고 무한한 가치의 기준을 가지고 간 길이었습니다. 그 가치의 기준은 온 세계가 소망할 수 있는 중심 내용을 지닌 것이기 때문에, 그의 가르침은 기필코 인간이 찾아야 할 소망의 기준이요, 찾아가야 할 참된 길이기 때문에, 그 가르침을 통해서 세계가 규합되어 가지고 오늘날 민주세계가 창건되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공자 같은 양반도,‘위선자는 천보지이복하고(爲善者 天報之以福) 위불선 자는 천보지 이화니라(爲不善者 天報之以禍)'고했습니다. 막연하게 나마 하늘에 대해서 가르쳐 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과 화합할 수 있고, 하늘에 조화되어 찬양할 수 있는, 전세계가 평등하고, 전세계가 같이 잘살기를 바라는 욕구의 기원이 어디 있느냐 할 때에, 여러분의 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 선에 바탕을 둔 마음이 바라는 것은 인류가 서로 원수시하고, 서로 싸우면서 피를 흘리고, 서로 죽이고 죽는 이러한 것이 아니라 자유와 평화와 행복이 깃든 가운데 서로 서로 우애할 수 있는 인연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의 소망입니다. 그런데 그 소망이 몸뚱이에.서 나오는 것이냐? 아닙니다. 몸뚱이는 배고프면 자기 형님 누나 손에 있는 한 덩이밖에 없는 떡도 빼앗아 먹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몸뚱이에서 나오는 욕망은 그런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 이건 어디까지나 마음의 소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