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집: 축복 1970년 03월 22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64 Search Speeches

축복의 기원과 그 성립조건

오늘날 뜻을 중심삼고 축복이라는 말을 생각해 볼 때, 이 말은 통일교회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은 지금까지 하나님이 복귀섭리를 해 나오시면서 내적인 마음속에 지녀 가지고, 이것이 실천되기를 바라며 나오셨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해와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축복해 주시며 그것이 이뤄지기를 바라시던 것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축복을 아직까지 그 누구도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서글픈 입장에서 축복이 실천되기를 소원 중의 소원으로 고대하면서 지금까지의 역사 과정을 거쳐 나오셨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러한 4천년의 역사과정을 거친 연후에, 하나님이 본래부터 주고 싶었던 축복을 최후로 결행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섭리역사를 하셨지만, 예수님 역시 그 축복의 자리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돌아가신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 이후에도 수천년의 기독교 역사과정에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순교의 피를 흘리면서 싸워 나왔지만, 아직까지도 그 하나님의 소원을 풀지 못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축복이라는 말은 우리 통일교회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창세로부터 타락한 이후인 지금까지 역사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내심 가운데 하나의 소원으로서, 하나님이 언제나 이것을 추구하고 바라고 나오셨다는 것을 우리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소원의 한날을 찾기 위해서 하나님이 지금까지 수난의 길을 걸어오셨지만, 아직까지 이날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이 한날을 찾는다면 이날은 역사적인 해원성사를 할 수 있는 날이요, 하나님의 역사적인 소원을 성취하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 이 축복의 자리가 얼마나 엄청나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타락한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을 중심삼은 직계의 혈연관계를 갖고 태어나지 못하였습니다. 때문에 이것을 부정하고, 하나님과 새로운 인연을 맺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지 않으면 축복의 자리에 나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타락한 사망의 세계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은 생명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부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새롭게 탄생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여기서 탄생해 가지고 탄생한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장성할 수 있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것을 거치기 위해서는 제반 탕감조건을 세워 가지고 나가야 되는 거예요. 제반 탕감조건을 세워 가지고 나가는 데 있어서는 개인적인 사명뿐만 아니라, 국가적인 사명과 세계적인 사명도 함께 책임지고 나가야 됩니다. 이러한 책임을 중심으로 해서 어떻게 해 왔느냐에 따라 축복이라는 문제가 좌우된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축복이라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김이면 김, 박이면 박, 개인으로서 복될 수 있는 자리에 선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떤 하나의 존재가 축복의 자리에 임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먼저 갖추어야 하느냐? 반드시 여기에는 먼저 갖추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축복이 자기 개인을 위해 해주는 것이 아니고, 그 개인으로 하여금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대신한 새로운 가정을 이루도록 하기 위해 해주는 것입니다. 그 가정은 자기 개체, 김씨면 김씨만을 위한 가정이 아닙니다. 그 김씨만의 가정이 아니라 민족과 국가를 대신하고, 더 나아가서는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가정입니다. 이러한 가정을 이루지 않으면 축복이 성립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