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6집: 뜻 앞에 선 통일교회의 어제와 오늘 1983년 04월 24일, 한국 본부교회 Page #249 Search Speeches

자식은 하나님의 사'의 심정을 체휼하기 위한 것

그래서 사람은 사랑에서 나 가지고 사랑에서 사는 겁니다. 횡적인 사랑을 거쳐 가지고 핵적인 기준에 들어가 천주의 사랑을 대표할 수 있는 핵심적인 심정을 가진 그 자리에서 자녀가 출생할 때에, 하나님이 이 천지의 심정을 통해 가지고 만물을 창조하고 아담 해와를 창조하던 그심정을 내가 체휼하는 것입니다. 그게 자녀에 대한 사랑입니다. 자녀가 코를 흘리고 똥을 싸도….

우리 어머니가 상당히 깔끔한 사람이라구요. 내가 여기에 조금만 침을 묻혀도 싹 문대는 사람이예요. 그런데 우리 애기가 코를 흘려도 그저 서슴지 않고 가서 얼싸안고 키스를 하는 거예요. 아, 남편에 대한 사랑보다도 자녀에 대한 사랑이 더 두텁구만 하는 걸 알게 돼요. 그거 왜 그래요? 본질적 사랑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천지가 변해도 변하지 않아요. 그건 모든 동물세계도 마찬가지이고, 인간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그렇게 사랑했다는 것을 체휼적으로 보여 준 거예요. 그래, 불효된 사람이 자기가 자식을 낳아 봐야 부모의 사랑을 아는 것과 마찬가지라구요. 자식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느꼈던 본연의 원칙적인 결과에 내가 서 가지고 결과적인 내정을 일치화시키려는 놀음으로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창조주가 창조했던 그 심정을 연장한 중심, 제2의 센터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기반이예요.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자식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됩니다.

한국에서 붓글씨 쓸 때 내리긋는 것을 보면, 붓글씨 쓸 때 웃대가리가 커요, 아랫대가리가 커요? 「웃대가리요」 웃대가리가 커 가지고 점점점 내려가면서 싹─ 뾰족해진다는 거예요. 그건 뭐냐 하면 원인적 중심이 위고 결과적 중심이 아래라는 겁니다. 아래는 회전하기 위한 하나의 기점이지, 정착하기 위한 기점이 아닌 것을 알아야 돼요. 우리 가정적 사랑에 부모의 사랑이 있다는 것은 정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회전하기 위한 하나의 초점입니다. 정착하는 것은 하나님으로 돌아가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자식 대하는 사랑보다도 하나님을 대하는 사랑이 커야만 이 우주의 원칙적인 주류의 센터, 사랑의 센터에 일치될 수 있다, 이렇게 봅니다. 그래서 처자는 버릴지언정 부모를 버릴 수 없다는 그 동양사상의 가르침은 놀라운 것입니다. 오늘날 서양식은 어떠냐 하면 말이예요, 아래가 굵다 이거예요, 아래가. 저 꼭대기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평면적인 나로부터 시작해서 위로 올라간다는 겁니다. 전부가 나 중심삼은 거라구요. 부모는 상관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할 수 없이 하나님은 동양과 서양을 갖다 붙이기 위한 운동을 했습니다. 그래서 일본이 1978년도를 중심삼고 세계무대에 급격적으로 등장한 것도 동양문화권 앞에 서양문화권을 흡수시키기 위한 하나의 섭리적 작전이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그래 자식이 뭐라구요?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창조하여 좋아하시고, 희망을 가졌던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기 위한 거예요. 다시 말하면 제1의 원인이 하나님인데 인간이 제2결과적 존재로서 제1의 원인인 하나님의 사랑의 심정을 체휼하기 위한 그 내용이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입니다.

그래서 자식을 통해서 어떻게 되느냐 하면 자식을 통해서 돌아가요. 그래서 자식에게 훌륭하라고 하지요?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희생하더라도 훌륭해지라고 합니다. 그건 왜 그러냐? 근본에 돌아가서 '어서 커라, 어서 잘되어라' 하고 자꾸 밀어 준다는 거예요. 그건 뭐냐 하면, 본연의 자리에 돌아가는 거예요. 그렇게 돼야, 이렇게 돌아오던 그 면이 저쪽에 돌아가 붙어야 여기에 부자의 사랑권의 구형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과 부자의 관계를 맺으면, 횡적인 기준에서의 입체적 기준이 확대되어 구형 사랑의 이상권이 지상에 형성된다고 보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자식을 통해서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려는 운명이 있기 때문에 부모는 그렇게 고생하면서도, 몸부림치면서 그 자식이 훌륭한 자식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거예요. 죽으면서도 그걸 바란다는 겁니다. 자식이 아무리 나쁘더라도 끝까지 잘되기를 바라는 것은 천지가 가는 길이 그렇기 때문이예요. 그래 그 길을 추구하는 부모들이 많다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그 사랑을 가지고 돌아가기 위한 사랑의 인연이 인간들이 필요로 하는, 부부들이 필요로 하는 자녀였더라 이겁니다. 그 다리를 놓아야만 내 자신이 하늘과 통하고, 하늘과 주고받을 수 있는 길이 생긴다는 겁니다. 아시겠어요? 이것은 절대적 요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식을 갖지 못한 사람은 천국에 못 간다는 것입니다. 저나라에 가 가지고 뭔지 모른다는 거예요. 부모에 대한 사랑을 모르고, 부부에 대한 사랑을 모르고, 자식에 대한 사랑을 모르게 되면 자기의 존재 의식을 느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러기에 통일교회 교리를 보게 되면 하나님의 사랑은 3사랑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 이 사랑을 완전히 하나로 통합시키기 위한 그 본질의…. 그것이 하나되어 가지고 어떻게 되느냐 하면, 하나님을 반드시 센터에 모셔야 됩니다. 하나님이 센터가 아니면 안 됩니다. 그래 자식에게 효자가 되라고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우리 가정에 하나님을 센터로 모시기 위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