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집: 최후의 한때와 나 1970년 03월 12일, 한국 통일산업 (구리시 수택리) Page #292 Search Speeches

소망의 한 때와 비운의 한 때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는 복귀가 필요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본연의 세계에서 아담을 중심삼고 소망했던 것은 오늘날 복귀해야 할 세상에서 고대하는 그런 소망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아담 해와를 창조한 전적인 소망은 그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 자신을 현현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담 해와를 통하여 하나님의 내적인 요소를 외적 실체로서 전개시켜 가지고 하나님이 소망하시는 원대한 희망과 인간의 소망이 일치된 한때를 맞을 수 있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아담 해와는 자신들이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의 소망의 한때에 자신들을 연결시키기 위해 지음 받았다는 사실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아담이 타락하기 직전까지는 하나님과 일치될 수 있는 자리에 있었고, 또 하나님의 소망과 일치될 수 있는 자리에 있었지만 타락한 그날부터는 하나님과 일치될 수 있는 자리도, 또 하나님의 소망과 일치될 수 있는 자리도 갖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곧 타락한 입장인 것입니다.

인간이 이러한 입장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타락한 인간을 바라보고 계셔야 한다는 사실은 천지역사 가운데 있어서 비통한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사실이 아무리 관념적으로 슬프고 혹은 참을 수 없는 슬픔을 갖게 하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때, 여기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내용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본연의 자리를 찾아가기 위해서 사랑하는 독생자를 불우한 환경에 보냈다가 그 자식을 잃은 입장에 서게 될 때, 그 하나님이 당하는 아픈 마음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일을 당해 보기 전에는 설명해 가지고는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에게 있어서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그런 일을 체험할 수 있는 경지를 모색해 보는 것도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슬퍼하셨던 내용을 아는 데 있어서 필요하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자식은 부모가 자기를 어느 정도로 사랑하느냐 하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자기가 부모를 따르고 부모를 좋아하는 그 기준으로 부모가 자기를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식의 차원과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차원은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부모의 입장에서 다시는 창조할 수 없다는 절대적 기준을 세워 놓고 지었던 아담 해와이기 때문에, 그들이 타락한 그 순간부터는 인간 스스로 출발할 수 없다는 것을 절대적인 철칙으로 해 오셨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압니다.

하나님은 이상의 한때를 바라셨지만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비운의 한때를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비운의 역사를 엮어온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타락으로 인한 비통한 마음을 어떻게 마음속에서 빼버리느냐 하는 것이 문제요, 인류도 이러한 비참한 운명을 어떻게 청산하여 본연의 위치를 다시 찾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자신들은 영원한 쇠사슬에 얽매여 있는 자신을 해방하는 것이 문제요,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비통함을 어떻게 빼버릴 것이냐가 문제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