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집: 아버지와 나 1959년 07월 12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64 Search Speeches

한민족의 나아갈 길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셨으나 처참한 30여년의 생애와 슬픔과 고난의 3년 공생애노정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이 가로막는다 할지라도 그것을 제거시키고도 남을 수 있었던 늠름한 기세, 불타오르는 심정에 사무쳐 당시의 이스라엘 민족을 몽땅 복귀한다 해도 부족타 할 수 있었던 그런 기세의 용자였습니다. 그런 용자가 오늘 이 시대에 필요합니다. 그 민족이 예수를 곤경에 몰아넣을 적마다 내모는 그들과 싸우는 것보다 도리어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 잠을 이루지 못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시던 예수님이었습니다. 그 여유의 인격, 존경할만 합니다.

예수님도 그 국가와 민족의 핍박에 부딪히게 될 때는 홀로 고요한 곳을 찾아 천상을 향하여 아버지를 부르며 호소하여 그런 고개를 넘으셨으니, 이 민족의 살 길도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심정이 있어야 합니다.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입는 것도 잊어버리고, 인간적인 모든 조건도 다 무시해 버리고 `아버지, 저는 아버지의 아들, 아버지의 딸'이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아들 딸이 있다면 민족이 밟히고 모든 것이 제물이 될지라도 심정의 세계에 있어서는 어느 민족보다도 하늘 앞에 가까운 민족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나쁘게 대할 수 있겠어요. 그렇지 않아요? 어떤 부모라도 심정을 갖고 대해 주는 자식,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하는 심정을 갖고 움직이는 자식 앞에서는 오금을 못쓰는 것입니다. 인간도 그렇거든 하나님이야 말할 것도 없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속성을 지니지 않은 인간이 어디 있어요? 하나님이 그렇기 때문에 인간도 그런 것입니다.

불쌍한 처지에 있는 이 민족이 살길을 찾아, 하나님의 심정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그런 자리에서도 `아버지여, 감사합니다' 할 수 있어야 됩니다. 자유로운 처지에서 하늘을 원망하는 민족과 어려운 처지에서도 하늘을 대하여 `감사합니다' 하며 눈물짓는 민족과는 천지 차이일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과 우리들은 부자지간, 오늘 우리들이 아무리 고생하고 아무리 어렵다 하여도 어떤 핍박을 당하고 어떤 어려운 환경이 나를 막더라도 6천년 동안 그런 것을 겪어오신 아버지의 성상과는 비할 바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뜻을 위해 일을 하다가 상처를 입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바라보며 우는 자가 되지 말고 나보다 더한 상처를 입고 계신 아버지를 위로해 드려야겠습니다. 자신의 상처를 잊으시고 상처입은 나를 찾아오셔서 눈물지으시는 아버지입니다. 황공하고 망극한 일입니다.

이제 우리들은 무언가 해야 되겠습니다. 이 민족의 민족정신이 희박해져 가고 있습니다. 이 민족은 천륜 앞에 무엇을 내놓을 것인고? 오늘 이 세계, 이 시대에 제시할 아무런 내용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오늘날까지 건드리지 못한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심정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 심정의 세계를 깊숙히 느낄 자는 어떤 자뇨. 어려운 자리에 동참하는 자입니다. 어려운 자리에서 참으면서 아버지를 부르는 자입니다. 역사적인 슬픔을 안고 오신 아버지를 가까이 대할 수 있는 조건을 가져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알고 보면 우리 민족은 서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늘이 안 계시다면 한스러울 것으로되 하늘이 계시다 할진대 한스러울 것이 없습니다. 6천년 역사노정에서 가장 불쌍한 이 민족이로되 그 마음으로는 하늘을 생각하였다 할진대, 어느 민족보다도 아버지에게 뼈에 사무치는 자극을 일으켰을 것입니다. 이 민족에게 부자의 인연을 세울 수 있는 움직임이 있다 할진대 이로 말미암아 새로운 세계는 전개될 것입니다. 하늘이 우리 앞에 그런 길을 철석같이 약속해 놓으셨고, 예수도 그 내용을 우리에게 훈계하는 것이 최고의 목적이라 할진대, 우리 민족을 무시하고 어디로, 어디로 가겠습니까? 우리들은 이런 신념을 갖고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