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집: 행복과 사랑 1969년 05월 18일, 한국 수원교회 Page #139 Search Speeches

우리가 일본-서 -경을 극복하며 활동하" 목적

일본 실업계의 경제인들이 통일교회 원리연구회패들은 꽃장사도 하고 폐품수집을 해서 생활하며 거리에서 생명을 내놓고 싸우는 것은 너무나 비참하지 않는냐고 말을 합니다. 일본의 지식인이나 재벌들이 자기 나라에 절대 필요한 원리연구회패들을 그렇게 비참한 자리에서 일을 하게 한다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경제인들을 소집해 가지고 자기네들이 돈을 댈 테니 일만 하라고 합니다. 돈! 우리는 돈이 목적이 아닙니다. 일본의 자민당에서도 선생님이 일본에 온 것을 알고 선생님에게 `자민당이 어떤 코오스를 통해서 돈을 대주고 싶은데 어떻습니까' 하고 문의를 해 왔습니다. 그래서 집어치우라고 했습니다. 통일교회가 언제 돈에 팔려 다녔습니까?

그래서 이번에 일본의 경제인 패거리가 우리 정부의 초청을 받아 내일 모레인 20일에 오게 됩니다. 통일교회 패를 따라서 오는 거예요.

선생님이 선화 어린이 무용단 명예회장을 누구를 시켰느냐 하면 일본의 기시 전 수상을 시켰습니다. 기시수상이 한국의 코흘리개 선화 어린이 무용단의 명예회장을 되었으니 모두들 얼마나 놀랬겠어요. 사또 수상이 지금도 신망이 높은데 그 사또 정부가 발깍 뒤집어졌습니다. 누구의 바람이 불어서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떡 그렇게 해놨으니 어떻겠어요?

선화 어린이 무용단 입장권을 판매할 때도 천오백원 이상 받으라고 선생님이 일본 협회장에게 지시했습니다. 돈을 한푼 받지 않더라도 전부다 애들만 모여서 공연을 한다니 시시하다고 오지 않을 판이었습니다. 그러니 선생님은 그것을 전부 계산하고 있었어요. 우리 식구가 몇만명씩이나 되니 한 사람이 몇 장씩만 팔아도 순식간에 팔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 이미 성공해 둔 것입니다. 그들은 이런 사정을 모르지요. 극장 측에서도 세계에서 끌어온 연예계의 정상을 달리는 사람들도 많은데 한국의 어린 코흘리개들이 공연하는 한국 무용이 뭐가 좋아서 보러 오겠느냐며 코웃음을 쳤습니다. 그러면서 임차료 전체를 현금으로 갖다 줘도 나중에 자기들이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는다고 극장을 빌려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원래는 계약금 얼마씩만 주면 되는데 전액을 다 주어도 안 받겠다는 것이었어요.

그런 것을 보면 그들이 그만큼 고의적으로 한국 민족을 업신여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거기 책임자들을 보면 20대에서 30대 미만의 젊은이들이예요. 때문에 그들이 우리 무용단을 받게 되면 기성세대 사람들로부터 젊은이들이 어른을 속여먹는다고 비판한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렇게 거절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후퇴할 우리가 아니죠. 그들과 싸움을 하다시피 해서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런 우여곡절을 겪은 후, 공연하는 날 아침에 선생님이 지시했습니다. 일본 사람들에게는 얘기하지 말고 우리 한국 사람에게는 일전 한푼 받지 말라고. 그래 가지고 초만원을 이루게 했습니다. 표를 전부 팔아서 초만원이 되었기 때문에 문전에서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주가가 올라가게 되었고, 사람을 밀치고 밀치고 겨우 극장에 들어가면 백승장군처럼 기분이 좋지 않겠어요? 그렇게 해서 자동적으로 주가가 올라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원리연구회 젊은 사람들을 처처에 앉게 했습니다. 앉아 가지고 어떻게 했느냐? 아리랑 고개가 나오고 닐리리 노래가락이 나오면 소를 지르고 박수를 치게 했습니다. 청중들이 노래는 잘 모르지만 무용을 잘하는데다 사방에서 박수를 치고 소리를 지르니 늙은이 젊은이 할 것 없이 `선화어린이무용단 잘도 한다' 하며 장단을 맞추었습니다. 그런 것을 보니 미국 춤은 비교가 안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일은 일본 역사에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 일을 누가 시켰는지 그 사람들은 지금도 모를 것입니다.

일본에 사사까와 료오이찌(笹川良一)라는 재벌이 한 사람 있는데, 일년에 3천억엔의 돈을 움직이는 그 영감이 선생님의 말을 잘 듣습니다. 일본이 선박회사로서 세계에서 일등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은 이 영감의 공입니다. 한번은 이 영감이, 자기가 선박회사 사장에다가 선박을 짓는 회사의 총재니까 한국 대사관 앞에 있는 모다스께라는 호수에 요트 시합을 주선해 놓고 선생님을 귀빈이라고 떡 초청했습니다. 선생님이 귀빈은 귀빈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