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집: 찾아오시는 아버지 1960년 05월 22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05 Search Speeches

잃어버린 자식을 찾아 나오시" 처량한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이런 기준을 가지고 찾아 나오시되 맨 끝에서부터 찾아나오십니다. 타락한 자식들이 몰림을 당하게 되었을 때에는 그 선두가 되셨습니다. 바로 궁중에서 쫓겨난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 앞에 선 것도 모세가 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서신 것입니다. 모세만 운 것이 아니예요. 하나님께서는 모세보다 더 우셨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하나님은 괴나리봇짐을 짊어진 김삿갓과 같다고 말입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짊어진 짐을 풀 곳이 없어 이스라엘 민족한테 풀려고 했는데 그 민족이 배반함으로 말미암아 다시 그 보따리를 짊어지고 세계를 유랑하시는 신세가 되셨던 것입니다.

그 사무치는 마음과 그 끓어오르는 심정을 누가 알았더냐. 사람이야 잘났든 못났든 괜찮다는 겁니다. 알든 모르든, 유무식(有無識)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주는 효자 효녀가 누구일 것이며, 하나님을 모셔 줄 가정이 어디 있을 것이며, 하나님을 모셔 줄 민족이 어디 있을 것인가.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지구는 넓고, 그 위에 살고 있는 인류는 많아도 처참한 유랑객이 되신 아버지를 붙들고 눈물지어 주는 자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식을 만들려면 내가 네 아버지이고 내가 이렇게 이렇게 수고했다고 다 가르쳐 주어야 하니 참으로 원통한 사실입니다.

본래 하나님은 만우주를 주관하시는 분이요, 무한한 사랑으로 자식 앞에 나타나셔야 할 분입니다. 그런데 자식을 가져 보지 못한 채 슬프고 처량한 모습으로 허덕이는 아버지가 되셨으니, 얼마나 불쌍하냔 말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 보신 말씀과 같이 지극히 작은 고아 하나가 불쌍한 모습으로 자기 앞을 지나갈 때, '저기 아버지가 가시는구나' 하며 그를 붙들고 눈물짓는 자는 아버지를 모시는 자입니다. 또 남루한 옷을 입고 지나가는 걸인이 있을 때, 자기를 찾아오시는 아버지로 알고 '저와 같이 아버지도 가시는구나' 하며 눈물짓는 자도 아버지를 모시는 자입니다. 지나가던 행인을 대접하는 것이 아버지를 대접하는 것이라는 원칙이 거기서 나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