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집: 한 많은 아버지를 모실 이 1959년 05월 24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51 Search Speeches

예수님이 세우려 하신 복음의 내용과 민족과 세계를 구할 수 있" 자

우리는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수많은 말씀도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 말씀을 통하여 사랑의 심정에 사무친 신앙생활을 어느 만큼 해 왔습니까. 하늘의 심정을 품고 한 많은 역사를 바라보며 한 많은 뜻을 염려하고 한 많은 하나님의 심정을 헤아려 보았습니까? 사랑의 심정을 내세워 인류를 오라 하시는 하늘 아버지의 마음속에는 우리에게 기쁨을 소개하고 반기려 하시는 기쁨의 마음보다도 우리를 찾아 주시려는 슬픔과 고통이 더 많으시다는 것을 여러분은 체휼하여 보았습니까? 이런 마음을 체휼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여! 하늘을 보니 말할 수 없이 서럽습니다. 아버지를 바라보고 뜻을 생각할 때, 한없이 슬퍼해야 할 인류를 바라볼 때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럽습니다' 하는 마음, 이것이 예수가 지녔던 하늘을 대한 충절의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에게는 슬픔과 고통이 없어야 하기 때문에, '기쁨이 있다 할진대 아버지의 것으로 하시고 슬픔과 고통은 내게 맡기시옵소서' 하던 예수, 기쁜 것은 아버지 것으로 돌리려는 것이 예수가 세우려 하던 복음의 내용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들은 하늘의 복을 찾기 위하여 지금까지 허덕여 나왔습니다. 그러면 하늘의 복을 찾게 하고 하늘의 복을 소개할 수 있는 길을 누가 닦을 것이고, 이러한 터는 누가 닦을 것인고. 이 길과 터를 닦을 수 있는 책임자는 누구일 것인고. 이 길을 닦는 데는 기쁨으로 닦아지는 법이 없습니다.

기독교 역사는 슬픔의 역사요 고통의 역사입니다. 기독교라는 종교는 슬픔의 종교요 고통의 종교인 것입니다. 비단 기독교 뿐만이 아니라 도(道)라는 명사를 가지고 나가는 어떠한 종교도 이러한 형태로 움직여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역사적인 슬픔과 인류의 슬픔을 붙안고 뒤넘이치는 한 순간을 체휼했습니까? 역사적인 고통과 더불어 인류의 고통을 붙안고 뒤넘이치는 한 순간을 체휼했습니까? 체휼하지 못했다 할진대는 죽어서라도 해야 됩니다, 죽어서라도. 그곳이 지옥입니다. 슬픔의 곳, 그곳이 지옥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지상의 성도들은 지상에서 지옥의 슬픔을 박차고 넘어서야 되고, 지상에서 지옥의 고통을 밟고 넘어서야 됩니다. 그래야만이 죽기 전에 천국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적인 원리입니다.

민족을 구할 자는 어떤 자이뇨. 민족의 슬픔을 뼈저리게 느끼는 자, 민족의 고통을 뼈저리게 느끼는 자라야 합니다. 세계를 구할 자는 누구뇨. 오늘날 선진국은 미국이 아닙니다. 여러분 그들 앞에 기대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세계의 심부름꾼은 될 수 있으되 지배는 못 합니다. 만일에 그들이 세계의 슬픔을 아는 민족이라면 모릅니다. 세계의 고통을 아는 민족이라면 몰라요. 세계의 슬픔과 고통을 알지 못한다 할진대 그들은 세계를 지배할 수 없습니다.

일개 국가의 충신이라 할진대, 그는 그 국가의 모든 슬픔과 고통을 대신 짊어지고 살고자 하는 개척자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이념을 세우고 이 세계를 수습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뇨. 세계의 슬픔을 붙안고 우는 자들이요, 세계의 고통을 붙안고 몸부림치는 자들입니다. 이들로부터 세계의 기쁨은 소개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철칙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 한민족은 불쌍한 민족입니다. 오랜 역사노정을 거쳐왔지만 다른 민족 앞에 장담하고 나설 수 있는 어떠한 내용도 민족성도 갖지 못한 민족입니다. 가진 것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어요. 그러나 이제 이 민족이 21세기의 신문화시대에 하늘이 소망하시는 심정을 품고 인류의 슬픔을 붙안고 몸부림치는 민족이 되고, 인류의 고통을 붙안고 몸부림치는 민족이 된다면,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슬픔과 하나님의 고통을 붙들고 몸부림치는 민족이 된다면, 세계를 지도하고 하늘의 사랑을 받는 민족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