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집: 모든 존재의 목적의식과 하나의 세계 1960년 06월 19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319 Search Speeches

"세계통일, 천주통일을 이루어야 할 재림예수"

오늘날 세계의 사조는 두 개로 갈라져 있습니다. 좌우(左右), 유심(唯心)과 유물(唯物)로 갈라져 있는데 이들은 어느 한날 서로 부딪치게 될 것입니다. 부딪치는데 기쁨으로 부딪치느냐 공포로 부딪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공포로 부딪치는 날에는 전세계는 사망이요, 기쁨으로 부딪치는 날에는 전세계는 행복입니다. 위협과 공포로써 하나를 만들고자 하면 끝이 있으되, 평화와 기쁨의 내용으로 하나를 만들고자 하면 영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기로에 놓여 있는 현실입니다. 더우기나 이런 현실에서 최고의 제물된 입장에 있는 것이 한반도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예수를 믿는 기독교인들입니다. 그러니 기독교인들이 불쌍합니다. 그런데 오늘의 한국 기독교는 떨어졌습니다. 그들보다 더 불쌍한 사람들이 여러분들입니다. 제일 불쌍한 사람들이 바로 여러분들인 것입니다. 떨어진 기독교인들에게조차 배척을 받는 여러분입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맙시다. 시간을 넘고 시대성을 넘어서 보고 듣고 느껴 낙망하지 맙시다. 문제는 여기에 있는 거예요. 시간관념권 내에서 느끼는 만족은 얼마 안 갑니다. 쉽게 해명할 수는 없지만 초월적인 그 무엇을 체휼합시다.

세상의 그 무엇도 나의 의식관념을 제거시키지 못한다는 기준을 갖고 하늘을 기반으로 자기의 가치를 하나님의 목적의식과 결부시키는 하늘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는데는 개인이나 가정, 혹은 사회나 국가나 세계에 어떻게 천적인 심정을 결부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이 잠을 자는 동안에도 그런 내용을 인간에게 충격시키십니다. 해결해야 할 심정적이고 생명적인 내용을 갖고 인간을 찾아오십니다. 그래야 될 게 아니예요? 맹목적인 신앙을 하는 사람들은 깜짝 놀랄 것입니다. 어이쿠 할 것입니다.

나는 의식세계를 넘어선 창조목적의 세계를 원합니다. 풀 한 포기를 보더라도 거기에서 무궁무진한 평화의 감정을 느낄 수 있고, 그 존재가치를 찬양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보는 것도 그러하고 느끼는 것도 그러하여 인간이 비록 작은 존재로되 '한 개체가 움직일 때마다 천지가 움직이고, 하나님의 심정이 움직이고 영원한 생명이 움직이니 놀랍소이다'하는 피조만물로부터의 찬양을 받을 수 있는 그 자리까지 가야 합니다. 인간이 가야 할 곳이 그런 곳입니다. 존재목적의 가치와 그 의식이 하나된 세계, 우리들이 느끼는 감각은 누구나 다 마찬가지일진대, 우리의 생명을 통하여 양심을 넘어 심정의 세계로 흘러 들어오는 영원한 생명의 감촉은 인간적인 그 무엇을 가지고도 주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조나 풍습여하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감정을 폭발시켜 만인간에게 접촉시켜 준다 할진대, 세계는 통일이 될 것입니다. 천주가 통일되는 것입니다. 말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재림예수는 실제로 이러한 내용을 가지고 오십니다. 그래야 주님으로 맞을 수 있지요. 생각을 하려면 그렇게 해야 됩니다. 또 사실이 그렇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 사람이 괜히 해보는 추상적인 말이 아닙니다.

이러한 목적의식은 나를 추궁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세계는 자유와 해방을 요구하는데 환경은 그렇지 않으니 '이게 웬일입니까?' 하고 호소한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양심의 깊은 곳에서는 자유와 해방, 통일과 귀일, 무한한 행복을 노래할 수 있기를 고대하고 있는데, 살고 있는 생활환경은 어떠합니까? 공포와 위협이 나를 결박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수천년 동안이나 이렇듯 결박당하면서도 오늘날까지 온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때가 가까웠거늘, 이 결박을 풀고 하나의 목적의식을 통하여 만우주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생명적인 존재, 하나님도 어쩔 수없이 심정적인 인연을 맺고 그가 지옥으로 가면 지옥에까지 따라 가실 수 있는 존재가 나타나야 합니다. 그러한 심정적인 귀일점을 갖춘 분이 이 땅 위에 나타나지 않으면, 하늘과 땅은 망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아야 되겠어요.

여기에서 외치는 이 사람은 지금까지 이 민족 앞에 반대를 받았으나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어림없습니다. 두고 보자 이겁니다. 한날을 바라보고 이를 악물고 나가는 것입니다. 입이 있음에도 말하지 않고 눈이 있음에도 보지 않고 귀가 있음에도 듣지 않고 모든 것을 참고 나가는 것입니다. 분한 일이 있어도 세상과 싸우지 않고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거기에서 반응이 없다면 보따리를 싸 짊어지는 거예요. 반응이 있으면 10년, 혹은 20년이 걸려도 가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