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0집: 세계평화통일가정당과 소명적인 책임 1992년 12월 15일, 한국 한남동 공관 Page #328 Search Speeches

창당 준비를 빨리 하라

창당대회는 올림픽 스타디움을 빌려서 해야 되겠구만! 지금까지는 곽정환이가 했으니까, 몇몇 사람을 더 엮어 가지고 전부 다 해서 창당 준비를 빨리 해요. 「예, 중앙에 사무처를 조직해야 합니다. 당 사무실도 정해야 하는데, 유종관 사무총장의 말로는 간판이 밖에서도 보여야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요. 」 「세계일보 안에 있으면 일반 사람들이 버스를 타고 갈 때도 보이지 않아서…. (유종관)」 높은 곳에 간판을 붙이면 되는 거야, 세계일보의 맨 꼭대기에! (웃음) 장소가 문제지, 지금 그게 문제야?

세계일보사가 편리하지요, 회의실도 많기 때문에. 바쁘면 호텔방 하나 빌려 쓰고 그러면 되는 것입니다. 도원빌딩에 가게 되면 칸막이 방밖에 없다구요. 「그래도 거기는 대변인이 있고 사무총장이 있어서 모든 매스컴을 타는 자리입니다. 사실, 세계일보의 그 공간은 옛날에 학생들 기숙사로 쓰이던 곳이라 초라합니다. (유종관)」 뭐가 초라해? 기숙사면 기숙사지…. 「옛날 기숙사를 개조했기 때문에 건물도 현대식 건물이 아닙니다. 」맨 처음에 나올 때 컸다가는 나중에 작아진다구요. 작아도 크게 생각해야지요. 겉치레하는 것을 선생님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중앙당이 좀 멋있게 되면 지구당은 자동적으로 되는데, 중앙당이 구석에 박혀 있으면…. 그리고 선거관리위원회에 신청할 때 도원빌딩 4층으로 해 가지고 대표전화가 되었는데, 그것도 변경하려면 한참 걸린다고 합니다. 」 (웃음) 변경하는 것은 아무 걱정도 없다구! 가 보면 안다구! 4층은 방이 절반도 안 된다고 했지?

「예. 」 이것을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방 한 칸은 되어야 한다구, 한 칸. 지금은 그곳에 어느 회사가 들어와 있다며…? 「예. 」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지금까지 자기의 건물 안에서 창당한 당이 그렇게 많지 않답니다. 그런데 아버님은 처음부터 도원빌딩에서…. (유종관)」 그래, 도원빌딩으로 하자! (웃음) '도원(都元)'은 서울에서 제일간다는 뜻이라구! 「도원빌딩이 좋습니다. 」 「그 근처에 다른 당도 있지요? 」 「바로 그 길 건너에 민주당이 있습니다. 」 길 건너에 민주당이 있어? 「예. 」 왔다갔다하면서 의논하기 좋겠구만! 그리고 4층을 좀 넓게 해야지, 반 칸 가지고는 안 된다구! 「예, 넓게 하겠습니다. 」그것은 곽정환이 재단 이사장이니까 의논해서 잘해요. 「예. 」 아무래도 남자들이 도와줘야지요. 이제 이것을 만들어 주면 나는 세계를 배타고 유람해도 될 때가 왔다구요. 「앞으로 더 바빠지시게 되셨습니다. 」 왜 바빠? 「공천하셔야지요. 」 (웃음) 내가 공천 안 한다구! 공천이 무슨 공천이야, 추첨하지! 직접 선거, 간접 선거, 추첨하는 거라구요.

요즘의 식으로 하게 되면, 출마하겠다는 사람들에게 돈을 내라고 해서 협력해 가지고 열 사람이면 열 사람이 천만 원씩 내면 1억이 되잖아요? 1억씩 내면 10억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모아 가지고 한 사람을 뽑아서 그 돈을 가지고 당선시키고 그다음에 1차, 2차로 돌아가면서 하는 것입니다. 걱정이 없다구요. 돈 한푼 안 가지고도 할 수 있는 거라구요. 그러면 홍길동 같은 녀석들이 죽어도 반대하겠지만, 이제부터 그렇게 나갑니다. 우리 당은 그렇게 나가는 거예요. 남자 여자 둘을 내세워 가지고 직선, 간선, 추첨하는 것입니다.

아시아평화여성연합을 일본에서 하는데, 거기에 모여든 사람들이 전부 다 난다긴다하는 여자들이거든! 대사(大使)를 지낸 여자들이 없나, 대사 부인들이 없나…. 전부 다 난다긴다하는 여자들입니다. 전부 다 여기에 와서 회장을 하겠다고 자기들끼리 공작하고 돈 보따리를 쥐어 가지고 '내가 한다. 네가 한다. ' 하며 싸움하고 논란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곳에서 지금 내가 말한 식으로 딱 했더니 찍소리 한마디 없었습니다. 다 추첨했다는 거예요.

이런 식으로 하게 되면 앞으로 부락이라든가, 그 나라에 유명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느냐? '아무개' 하게 되면 알 수 있는 이름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국민학교 때부터 공부는 어떻게 했고 자라면서는 어떻게 지냈고 부락에서는 어떻게 지냈다고 하는 역사가 자라는 학생들의 본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것이 도의 앙양(道義昻揚)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