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집: 우리의 책임 1972년 06월 01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21 Search Speeches

우리의 책임은 어""서부터 해야 되느냐

우리의 책임이라는 것은 어디서부터 해야 되느냐? 외적인 것부터 하는 것이 아니고 내적인 것부터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외적인 인격 체제를 우리의 책임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내적 인격을 단장해야만…. 외적으로 보이기 위해서 움직이는 것은 다 일소해 버리고 내적으로 숨어서, 그 누구도 모르게 가슴이 메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끼면서 전체가 동정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잠들고 깨며, 그 자리를 적셔 가는 생활을 하는 무리가 먼저 되어야 될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집에 들어가서 제멋대로 살다가 나타나 가지고는…. 그런 가증스러운 무리가 많지요? 그렇기 때문에 외적인 책임이 문제가 아닙니다. 외적인 책임은 전부 다 흘러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예수의 내적인 심정을 해원성사하고 하나님의 내적인 심정을 해원성사해야 됩니다. 이것이 이 시대에 있어서 예수가 무엇보다도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아픈 심정을 남겨 주었던, 불효된 죽음길을 갔던 예수가 오늘 이 시대에 있어서 우리로 말미암아 해원성사해 드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후원해 주고, 하늘이 후원해 주고, 사도들이 후원해 주고, 기독교가 후원해 주고, 역사적인 선조들이 후원을 해줘야만 될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 지금까지 그렇게 생활해 나와 가지고 후원을 해줄 것 같아요? 어림도 없다구요. 미급한 자리에서 된 듯한 무리는 망하는 것입니다. 가지도 못하고 중간에서 썩어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돼요.

그러기에 때가 가까와 오면 올수록, 끝날이 되면 될수록 두렵게 알고 해야 될 것은 밀실에 들어가 기도하라는 거예요. 진실된 자리에서 해야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진실된 자리. 밤이 되어 여러분이 밤하늘을 바라볼 때 그 별은 어젯날의 별과 다르다는 거예요. 너는 나에게 소원의 별로써 나타나고 내일의 소원을 촉구하는 빛으로 비추어 주느냐…. 깊은 심정의 인연 가운데서 모든 사연을 포괄해 가지고, 하늘을 향한 깊은 동정의 마음이 어려 가지고 하늘을 위로해 드리는 마음이 자기도 모르게 눈물과 더불어 그 환경을 에워쌀 수 있는 그런 자리에 들어가서 그 자신이 아들로서 하늘을 아버지라 불러야 됩니다.

여러분,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 제자들을 뒤에 두고 홀로 외로운 자리에, 정숙한 자리에 가 가지고 기도 시간을 찾아 나섰던 예수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따르던 5천여 무리를 다 뒤에 두고 홀로 하늘 앞에 기도 드린 예수…. 5천여 무리는 하늘을 위로해 주고 싶어서 나타난 무리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늘 앞에 자기 내정적인 심정으로, 하늘 앞에 5천여 무리를 맞는 이상의 기쁨으로 나타날 수 있는 아들의 모습을 어떻게 대신하느냐는 것이 언제나 문제였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통일교회 문선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하는 표준은 무엇이냐? 내 갈 길, 내 갈 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내가 갈 길, 내가 서 있는 자리는 이래야 된다고 하는…. 이래야 된다고 하는 그것이 뭐 잘먹고 잘살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심정적 기준 앞에 있어서 빚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선 이러한 내적인 책임을 다하는 데서 외적인 책임이 정리되는 것이지 내적인 책임을 못 하는 데서 외적인 책임이 정리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표준을 놓고 볼 때, 예수님과 예수님 제자들의 입장이 달랐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최고로 절정의 자리에서 긴장해 가지고 마음을 졸이고 있는데 제자들은 내적인 면에서 천리 만리라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