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5집: 협회창립 제34주년 기념일 말씀 1988년 05월 01일, 한국 본부교회 Page #310 Search Speeches

욕먹고 반대받아 온 34년

자, 그러면 34년 전, 그때에 문총재를 누가 알았어요? 이렇게 거대한 간판을 들고 나올 때 누가 환영했어요? 그래, 문총재는 어리석은 사람이예요. 주먹구구식으로 하고 욕심이 많아 가지고 한번 그저 이용…. 거 뭐라고 할까요? 금전판에 가서 노다지를 만나 가지고 일확천금을 얻으려는 그런 생각이 아니예요. 그런 걸 아는 사나이입니다.

그런 간판을 내거는 동시에 그 저변에 흐르는 사상적 관은 세계적인 핍박이 히말라야 에베레스트산 정상 이상으로 높더라도 내 눈물과 피살로 녹여 낸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게 문제입니다. 그게 문제예요. 바람아 불어와라, 태풍아 불어와라 이거예요.

자, 개인적으로 나를 반대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남편들이 얼마나 나를 반대했어요? 자기 여편네 빼앗아 갔다고 얼마나 선전했어요? 어미, 할머니들은 자기 딸을 빼앗아 갔다고 얼마나 반대했어요? 오빠동생들은 얼마나 반대했어요? 그 반대의 바람이 얼마나 장기적인 세월로 계속했던지 세계에까지 소문이 나 가지고 소문의 꼬리가 다시 와서 요즘엔 재탕까지 해먹어요. 일본 공산당에 의해 책이 시리즈로 세 권에 걸쳐 나와 있습니다. 완전히 새빨간 거짓말이예요. 사진을 거짓으로 찍어 증거물로 해 가지고 `문총재는 이렇다' 하는 거예요.

협회 세운 이후의 34년간에 문총재의 얼굴과 어깨와 등에는 욕주머니가 몇 개나 달렸다고 생각해요? 응? 역사 이래에, 욕먹는 역사시대에 있어서 챔피언의 기록을 갖고도 남을 수 있는 길을 걸어온 사람이 문총재입니다. 그건 세계가 인정합니다.

요전에 종교지도자들이 모여 가지고 `문총재가 위대한 것은 뭐냐?' 이러더라구요. 아무것도 모르지만, 신학이 어떻든 뭐가 어떻든 그건 모르겠지만, 뭘 어떻게 사기했는지 도적질했는지 벌거벗고 춤을 췄는지 모르겠지만 종교라는 이름을 가지고 한번 결의하고 나선 후 40년 동안 그렇게 두들겨 맞아도, 어떠한 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격파해서 전진적 발전을 해 나온 레버런 문이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여기 온 녀석들만 해도, 여러분 어미 아비들이 나를 찬양한 사람이…. 곽정환이 아버지만 해도 반대했지? 「예」 할 수 없어서, 법이 있어서 놔뒀지 그렇지 않았으면 칼 들고 담 넘어와서 나를 죽이려고 했을 거라구요. 그 영감 그럴 수 있는 성격이더라구, 보니까. (웃음) 그래, 안 그래? 그렇다고 본다구요. 여기 어미 아비, 사돈의 팔촌 나 반대 안 한 녀석 어디 있어? 재석씨는 선조가 아주 좋으니까 조상들이 안 그랬겠지, 이재석씨는? 협회장까지 해먹었는데. (웃음) 반대했나, 안 했나? 「했습니다」 그래, 재석이는 나 반대 안 했나? 「저는 입교 전엔 몰랐습니다」 에이, 들어와서도 반대했겠지. 반대라는 게 그렇잖아? `협회장 못해먹겠다'고 생각하면 반대지. (웃음) 들어와 보니 얼마나 복잡해? 협회장 못 해먹겠다고 나한테 이야기했던 그 기억이 있는데. (웃음) 얘기한 것이 내 기억에 있는데 그거 거짓말이야, 사실이야? 「사실입니다」 그게 반대지 뭐야? (웃음) 그 이상의 반대가 어디 있느냐 말이야. 그래도 내가 다 봐 가지고 그만큼 출세하라고 협회장까지 시켜 줬는데, 협회장이 잘만 하게 되면 돈 보따리도 갖다 쓸 수 있고, 수단이 좋다면 내 꼭대기에 올라갈 수 있는 권위도 줬는데 못 해먹겠다니 말이예요. (웃음) 그 이상의 반대가 어딨어요?

또, 김영휘는 어때? 반대했어, 안 했어? 「안 했습니다」 안 한 게 뭐야? 독일 가라는데 왜 싫다고 그랬어? (웃음) 이래 가지고 이놈은 일본으로 돌아다니고, 어떻게 조건이라도 잡으려고, 이놈의 자식! 나만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다 아누만. (웃음) 반대하지 않았어, 그거?

그러니 누굴 믿고 일 해먹겠어요? (웃음) 여기 김봉태 왔어? 「예」 오늘 안 나타날 줄 알았더니 나타났구만. 이놈의 자식, `나 카프(CARP)회장 10년 해먹었는데 또 카프회장이오?' 이랬지? 손대오 아래 들어가서 일하라니까 `나 못 하겠소' 그랬지? 그래, 내가 뭘 시킬 줄 알아, 이놈의 자식아! 도끼를 갖다가 칼을 만들어 뭘할 줄 알아? 그 다음에 뭘할 줄 알아, 이놈의 자식! 어저께는 기분 나빠 가지고 일찍 도망갔더구만. 왜 일찍 갔어? 「가지 않았습니다」 네 상통이 안 보이니 간 걸로 생각하지 않아? 그러고 나서는 얼굴 안 보이지 않았어? 안 그래?

그래, 선생님이 그런 말을 하니까 맘이 편안치 않았지? 편안치 않았지? 자, 솔직히 얘기해 봐!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반대한 거지, 이놈의 자식아! (웃음) 그 이상 반대가…. 효자의 전통을 가진 아들이 부모 앞에서 얼굴색 하나만 변해도 부모의 가슴은 철주를 박는 것보다도 더 아픈 거예요. 불효자의 천 마디 말보다도 효자의 한 가지 불순이 더 아프다는 것입니다. 그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놈의 자식들, 그게 반대지. 생각 한번 해보라구.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나 반대하지 않은 사람 어딨어요? 나를 뜯어먹고, 타고 다니고, 이용해 먹고는 더 이용 못 하게 한다고 입을 쫄쫄쫄 하고 말이예요. `십 년 부려먹고 삼십 년 부려먹고, 뭐 이렇고 이렇다'고…. 이놈의 자식, 부려먹기는 누가 부려먹어? 너희들이 날 부려먹었지. 통일교회 들어와서 한 게 뭐예요? 난 자지도 못하고 밤낮없이 세계적 기반을 닦아 놨는데 통일교회 들어와 가지고 뭘했어요? 전도한 것? 십 년, 이십 년, 삼십 년에 전도도 한두 사람밖에 못 했잖아, 쌍간나 자식들! 그다음, 누구 밥을 먹었어요? 통일교회 밥을 먹고 살지 않았어요? 통일교회 밥 먹은 값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요? 몇 억이 될 거라구요. 몇 억의 돈을 가지면 내가 하루 나가서 백 명도 사 올 수 있을 거예요. 나는 일주일 이내에 백 명, 수백 명도 전도할 수 있다구요. 강도 같은 패들이 많다는 거예요.

그다음에 또 황환채! 「예」 저 녀석도 마찬가지라구. 그래, 선생님 반대했어, 안했어? 부처끼리 쑥덕거렸지? 뭐 어쩌고 어쩌고 어쩌고…. 이럴 수 있느냐 이거예요. 그래, 통일교회 패로서…. 오늘 다 이것을 청산해 버리려고 합니다. 내가 34년을 떠억 했더라도 기분 나쁜 것은 후루룩 물이 통하듯 다 통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터놓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동안 선생님 반대 안 한 사람 손들어 봐요. `또 뭘 이렇게…. 미국갔다 오더니 남북통일운동국민연합은 또 뭣인고? 매일 저러다가 통일교회 문총재 그만두지'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오면 그저 요렇게 저렇게 못살게 하고 시켜 먹으려고 연구만 하는데, 어쩌면 사람이 저렇게 생겼어? 아이고, 천신만고 끝에 남비 짜박지를 준비해 가지고 보리밥이라도 끓여 먹으려는데, 옛날엔 간장을 부으면 수루룩 새 흘러 나와서 불이 다 꺼지고 그랬는데 이제는 간장도 새지 않고, 청어 대가리도 쪄 가지고 말랑말랑하니 대가리 맛이라도 들일까 생각하고 있는데 어떻게 남비 짜박지까지 뒤집어 박을 수 있어?' 하면서 말이예요, 반대 다 했다구요!

그러면 어머니는 어떨까요, 어머니? 어머니까지 갖다 대야만 이제 다…. 어머니는 어떨까요? 선생님이 만판 밤에도 좋고 낮에도 좋았을까요? 어디 한번 이야기해 보자구요. 여러분 답변해 봐요. 내가 어머니한테 미안하게시리 물어 보면 집에 가서 진짜 싸움한다구요. (웃음)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물어 보니까…. 이런 때는 어머니가 못 들은 척해야 돼요. 그것이 어머니의 책임이예요. 못 들은 척해야 어머님 위신이 당당한 거예요. `아이고 으으으…' 이러면 낙제입니다.

만년 행복이고 만년 평화였겠어요? 그렇다고 생각해요? 어머니도 여기 꼬집으면 아프겠어요, 안 아프겠어요? (웃음) 아프겠어요, 안 아프겠어요? 「아파요」 아프다면 어떻게 만년을 그렇게 행복해, 이 쌍것들아! 마찬가지입니다. 남자 여자 사는 방법은 마찬가지라구요. 울퉁불퉁하고 다 그런 거 아니예요? (웃음) 가시가 돋혔느냐, 안 돋혔느냐 하는 그것뿐이지 울퉁불퉁한 게 재미가 있는 거요. 안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