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0집: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1962년 02월 04일, 한국 이리교회 Page #299 Search Speeches

하나님이 책임져 주고 보장해 주" 종교를 믿어야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을 다시 생각해 봐야 됩니다. 나라의 혼란 시대가 오고, 어떤 종교가 부패하는 것이 전성기가 아니고 어느 한계에 도달할 때 지혜있는 사람들은 다시 볼 줄 알아라 이겁니다. 이해돼요? 거 이해돼요? 「예」 이런 논법에서 개인의 가정이 망해 들어가게 되면 다시 세워라 이겁니다. 또, 여러분이 결실할 것이 파죽지세로 이 세계를 정복할 것 같지만 가다가는 재차 정복당하게 됩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예요. 아직까지 이런 종말의 예고가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닙니다. 다시 생각해라! 그렇다고 망할 때만 다시 생각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또, 흥해 있지만 그 흥한 것이 원인적으로 하나님이 끝날이라고 선포한 그 찰나의 기준에 접촉될 수 있는 도상에 서 있으면 모르거니와 그렇지 않거든 다시 생각해라 이겁니다. 망하는 녀석도 생각하라. 흥하는 녀석들도 생각하라. 그러니까 전부가 생각해 봐라. 결론은 그렇게 됩니다. 그렇지요? 다시 생각해 봐라 이거예요.

우리가 새로운 문화세계를 꿈꾸고 있고, 새로운 역사 발전에 있어서 새로운 21세기의 비약적인 문화를 바라보는 교차 도상에 있어서 `다시 생각해 봐라' 하는 이 말은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배가 늘어진 사람이나 배가 들어간 사람이나, 누구누구 할 것 없이 전부 다 해당되는 것입니다. 종교고 뭐고 전부 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는 것도 다시 생각해 봐라. 세계 저 골짝마다, 그리고 아무리 고대광실 높은 용상에 앉았더라도 다시 생각해 봐라. 왜? 인간이 제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아직까지 하나님이 좋다 하는 결론을 받지 못했으니 하나님이 있다 할진대는….

`너희들 두고 봐라. 두고 봐라! 그냥 그대로 인계해 가지고 거기에다 하나님이 좋아할 수 있는 인연을 접붙여 가지고 가라. 더 받아라' 이러면 모르거니와 행여 백 번 가운데 한 수가 있을둥말둥 해요. 하늘은 그걸 바랍니다. 이렇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이면 기독교 각 종파는 물론 무슨 도를 물론하고라도 다 다시 생각해라 이겁니다. 이 결론을 내리면 여기에 다 들어간다 그 말이예요. 그렇지요? 「예」

좀 쉬어서 하자나, 그만 두자나? 그만 두자고? 이 결론에는 반드시 천하의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누구를 막론하고 다 들어갑니다. 다 들어간다 이거요.

천하에 널려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근성을 분석해 보게 될 때, 전부 다 좋아지기를 바라고 있지만 좋지 못한 환경에 있다는 거예요. 좋지 못한 환경에서 좋아지기를 바라고 허덕이며 울부짖고 있는 것이 세상 사람들의 고통이요, 비애요, 곡절입니다. 이러한 판국의 세상이 되었으니 결국 하나님이 이런 판국의 세상을 책임지고 나가야 된다는 거예요. 이런 세상을 책임지고 나가야 할 하나님이기 때문에, 오늘날 인간들 앞의 나쁜세상-좋던 녀석도 나빠지고 나쁜 녀석도 좋아져 바꾸어지는, 믿을 수 없는 세상, 이런 세상 앞에 하나님은 책임이 있기 때문에 말세라는 한계점을 세워 놓고 `조금 참아라. 참고 나가라' 하시는 겁니다.

참고 나가는 데는 그냥 참고 나가지 말라는 거예요. 신앙이라는 믿음을 중심삼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다 저버리더라도 하나님만은 믿어라 이거예요. 하나님만은 믿으라는 막연한 주제를 내걸어 놨습니다. 하나님만은 믿어라. 이건 모호하기 짝이 없단 말이예요. 하나님만은 믿어라. 죽을 때도 믿고, 기쁠 때도 믿고, 쫓겨다닐 때도 믿어라. 사정이나 환경이 천태만상으로 변하고 모양은 천태만상으로 달라지더라도 하늘을 믿는 것만은 변치 말아라 이겁니다. 그러면서 어떡하라고? 정성을 들여라! 정성을 들이라 이거예요. 여기에 곡절이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이여, 당신은 믿으라 할이만큼 책임질 수 있겠습니까? 믿겠다고 하는 사람을 믿어 주십니까? ' 하고 물어 봐야 돼요. `내가 믿는 데는 믿는 만큼 믿어 줍니까? ' 하고 물어 봐야 돼요. 또, `충성을 해라!'하면 `하겠습니다. 그런데 충성을 한만큼 충성으로 알아줍니까? ' 하고 물어봐야 됩니다.

맹목적인 말이요, 모호한 내용으로 우리 앞에 권고했지만 그것으로 모가지를 자르고 끌어 내릴 것이 아니라, 믿으라면 믿는 데 대해서 답을 가져야 되겠고, 충성을 하라면 충성을 하는 데 있어서 답을 가져야 됩니다. 왜? 까딱 잘못하면 믿는 데서도 나쁜 패거리들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믿긴 믿는 데 좋을 수 있는 것에 부딪치게 되면 괜찮겠지만서도, 저 사람이믿는 것, 내가 잘 안 믿는 것 용서받는…. (녹음이 잠시 끊김)

꼬불랑 꼬불랑 가긴 가는데, 여기서부터 이렇게 나가는 거예요, 여기서부터. 꼬불랑 꼬불랑. 그러면서 `슛! 골인'하는 그 믿음이…. 수많은 민족도 전부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이러한 복잡다단한 신앙이면 신앙, 믿음이면 믿음, 복잡다단한 환경과 단체이면 그 환경과 단체에 있어서 가져야 할 신앙, 대상을 향하는 신앙 관점에 있어서 전부 자기 제일주의를 주장하는 내용에 있어서 말세의 문을 통과할 수 있는 신앙이냐? 믿는 데는 내가 천당가겠다고 믿지 말라는 거요. 천당은 저 문만 통과하면 가는 거예요. 그게 목적이 아니예요. 자기가 가진 관념이 벌써 틀리다 그 말입니다.

그저 믿고 천당 가겠다는 건 막연하다는 거예요. 믿는 데는 이 말세의 문을 통과하여 하나님 앞에 있어서 `야, 믿어라!' 했던 것이 좋다고 보장해 줄 수 있어야 됩니다. 맨끝에 가서는 이렇게 변천해 나오는 거요.

끝에 가서 이 문을 통과할 수 있는 경지에 선 믿음으로. 하나님적 믿음입니다. 하나님 믿는 게 아니라 하나님적 믿음이예요. 하나님이 인정하는 믿음이예요, 그건. 또, 내가 충성하는 데는 이 권을 뚫고 나갈수 있는 충성을 해야 돼요. 거기다 맞춰야 됩니다. 거기 있다는 거예요.

교회에 그저 보따리 싸 들고 다니면서 찬송이나 하고…. (탁자를 두드리시며 찬송하는 흉내를 내심. 웃음) 이래 가지고 다 되는 게 아닙니다. 내가 알기로는 그렇게 안 돼 있다 이거요. 자기들도 그래가지고 또 찾아 해결하겠지요. 그거 틀렸다는 것이 아니요. 모르니까 내가 가르쳐 주려고 그래요. 이것을 통과할 수 있는 하나님 다음 사람있으면 나와! 만일에 이런 사람이 있다 할진대는, 나온 사람이 있다 할진대는 하나님이 책임지시지 않겠나 이거예요. 하나님이 책임을 진다 이겁니다. 어때요, 책임을 져 줘야 되겠어요, 안 져 줘야 되겠어요? 「책임을 져 줘야 됩니다」 천당 가겠다고 해서 천당가는 것이 아니라 천당 보내줘야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책임지는 자가 되어야합니다. 책임을 져 줄 수 있는 신앙을 해야 돼요.

책임을 져 주는 입장에 서게 되면 무엇이 되느냐? 어떻게 되느냐? 책임을 져 주겠다고 하면…. 말세라는 종말이라는 원리적 관점을 세워 놓은 것이 있기 때문에 책임을 지는 하나님으로서는 무엇을 주기 위한 것이냐? 하나님이 아까 말한…. 하나님도 지금까지 말하기를 아직 사랑하는 사람을 갖지 못했다고 합니다. 사랑할 사람을 갖지 못했다 이겁니다. 그래서 끝날에 가서는 하나님이 전부 다…. 그저 복잡다단한 것을 다 거쳐 가지고 넘어지고 쓰러지는 별의별 사정을 다 거쳐가지고 한 곳으로 넘어서야 됩니다.

종말적인 끝날에 있어서, 인간 도상에, 역사 도상에 있어서, 인류사적인, 혹은 천주적인 내용의 세계에 있어서 하나님이 비로소 `이야!'하고 기뻐하며 사랑하실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위해 노력하시는 겁니다. 그런 사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될 거 아녜요? 그래야 하나님도 구원하신 보람이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