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집: 불쌍하셨던 예수님 1964년 05월 03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57 Search Speeches

말 못할 예수님의 사정

낙원은 누가 먼저 들어갔어요? 강도가 먼저 들어갔습니다. 여러분들은 그걸 알아야 합니다.

끝날에 처한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당하신 억울함을 알아야 합니다. 억울했던 예수님의 사정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했으리 억울하고 분했으며, 땅 위에서 자기의 소원과 하고 싶은 말이 많았으나 하지 못했으니 억울하고 분했던 것입니다. 매를 맞고도 아프다는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어찌하여 사탄세계로부터 몰리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던고?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눈물 흘리는 비참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충신답게 하나님의 효자답게 가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매를 맞고 쫓기더라도 원통한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답게 늠름하게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책임을 못하고 간 예수님의 사정, 이 땅 위에 책임과 소원을 품고 와서도 그것을 말하지 못하고 간 예수님의 사정, 당대에 세계의 만민을 구원해서 복귀해야 하는데도 그러지 못하고 4천년 역사와 함께 죽어 가야 했던 예수님의 사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분했겠습니까? 예수님은 눈물을 흘려도 천주사적인 입장에서 흘렸고, 천주사적인 비참한 자리에서 십자가를 지고도 절망하지 않고 늠름하게 갔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땅의 역사적인 모든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만일 그들을 저주하면 인류구원섭리는 다 무너진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만일에 예수님이 '하나님, 나의 원수를 갚아 주시옵소서!´ 했다면 이스라엘 민족이 전부 다 지옥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소원을 유린하고 하나님의 소원을 유린했으니 심판하려면 모두 다 쓸어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이 4천년 동안이나 수고하여 세우신 민족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을 고대하고 자신을 세우기 위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준비하기까지 하나님이 얼마나 수고하셨는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저주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듯, 망하면 수습하여 다시 세우고 몇천만 번 수고하여 세운 이스라엘 민족이 이 땅에서 영원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할 입장에서 떨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이 이들에게 소망을 가지시고 이스라엘 땅에 보내셨고 나는 30여 년 동안 이들을 위해 살았고 이들을 위해 싸웠다. 이들을 위해 싸운 목적은 이들을 구하려는 것이었지 벌 주려는 것이 아니었다. 만일 내가 여기서 이들을 저주하면 이들은 물론 이들의 후손들까지도 전부 다 지옥에 가게 될 것이고, 또한 지금까지 세워 나온 복귀역사가 다 무너질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3차 기도를 했던 것입니다. '내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피맺힌 호소를 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예수님의 심정을 누가 알았던고? 오늘날 예수 믿고 천당 가서 신부 되겠다는 사람들이 아는가? 신부? 말이야 좋지요. 그 명사야 물론 좋지요.

그러나 그 명사를 성립시키기 위해 필요한 공의 노정과 고난과 슬픔과 비참의 과정은 어떻게 합니까?

대가를 치러야 됩니다. 빚진 자가 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