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1집: 소유권 1982년 10월 27일, 한국 본부교회 Page #191 Search Speeches

인간은 대우주의 축소체인 소우주

자, 이런 입장에서 여러분들이 새로운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 각오 내용은 어때야 되느냐? 그래서 오늘 내가 말하려는 말씀의 제목은 '소유권'이예요. 소유권이란 내용이 되겠습니다, 소유권. 내가 누구의 것이냐? 김 아무개면 김 아무개라는 한 사람이 그 지방 한 교회의 책임자로 서 있다 이거예요. 사람은 많지 않더라도, 몇 사람을 거느리고 있다 할 때 내가 누구냐 하면, 여러분은 언제나 '난 김 아무개다'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지, 섭리의 배후를 연결시켜 가지고 역사적인 사명을 맡고서 세계, 혹은 국가, 자기가 머무는 한 군이면 군, 부처면 부처에 소속한 요원이 돼 있다 하는 생각을 하기 힘들다 이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과 직접적 관계를 맺기가 힘듭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나님은 전체의 주인공이십니다. 전체의 주인공이십니다. 전체의 주인공으로 계시는데, 그 주인공이 머무를 수 있는 자리가 어디냐? 군이면 군으로부터 도를 거쳐, 나라를 거쳐, 나라와 나라를 합한 아시아권을 거쳐 가지고 세계 위에 서는 것입니다. 영계까지 합해 최고의 자리에 서야 할 하나님입니다.

그 말은 무슨 말이냐? 아래에서부터 올라가 가지고 최고의 자리에 있는 하나님까지 통해 하나님의 지령을 받아 가지고 또다시 내려올 수 있는 길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비로소 하나의 순회, 순환할 수 있는 회로, 써클(circle)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뿌리라면 뿌리에서부터 모든 진액을 받아 가지고 아무리 작은 잎, 끝에 달려 있는 잎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 요소를 지닐 수 있는 하나의 잎으로서 자라는 것입니다. 그 잎이 자라고 자라면 거기서 가지가 나오는 것입니다. 가지는 본질적으로 그 나무 뿌리의 내용을 지니고, 줄기의 내용을 지니고, 가지의 내용을 지니고, 잎의 내용을 지닐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심으면 다시 난다 이거예요.

삽목을 해 가지고 살 수 있는 나무라면 전체의 내용을 집합한 하나의 결속된 자체로서의 나뭇가지지, 부분적인 입장에 처한 자체로서의 가지는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뭇가지를 심으면 전체 형상이 드러납니다. 비록 나올 때는 한 눈에서 시작하는 작은 가지지만 결국 전체를 표준하고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분 자신들이 하나의 완전한 가지의 입장, 잎의 입장에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가지만으로의 가지가 아닙니다. 잎만으로의 잎이 아닙니다. 전체의 내용을 총합한 실체상으로서의 가지입니다. 이것을 삽목함으로 말미암아 거기에서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줄기도 생긴다 이거예요. 가지도 생긴다 이거예요. 잎도 물론 생깁니다. 꽃은 어디서 생기느냐? 비록 아무것도 없는 삽목한 나무꼬챙이 하나지만 그 안에는 꽃이 있었다 이거예요. 꽃도 그 가운데 깃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꽃 가운데 향기가 있어 자연과 조화작용을 일으켜 가지고 하나의 결실의 단계로 나갑니다. 씨도 있다 이거예요. 결국은 하나의 틀림없는 완전한 생명체, 생명 요소를 결합한 축소체로서의 가지였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하나도 결여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지금 여러분이 책임자의 소임을 하는 그 입장을 두고 보더라도 여러분은 지극히 작은 가지, 지극히 작은 잎과 같은 입장이지만, 그 잎이라는 것이 자기 김 아무개의 잎이 되어서는 안 되고 대한민국의 가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거예요. 전체를 축소시킨 내용을 지닌 가지가 되지 않으면 그 본질에 통할 수 있는 하나의 전체 나무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렇게 볼 때에 여러분은 그런 자각을 해야 되겠다 이거예요. 내가 지금은 작지마는 크기만 하면 삼천리 반도를 덮고, 아시아를 덮고, 세계를 덮고, 하늘땅을 덮을 수 있는 자체라는 것을 스스로 자각해라 이거예요. 그런 생각을 해봤어요? 자기 아는 정도에서 시작해 가지고 자기라는 관념을 중심삼고 '나는 어떤 지방의 책임자다' 하면, 그런 사람은 책임했댔자 하나님과의 영적인 요소가 연결될 수 있는 길이 끊어진다 이거예요. 하나님은 높으신 분으로 위에 있기 때문에 하나의 잎과 같이 작은 분야의 것이 되더라도 앞으로 그 뿌리에 연결될 수 있게 전부 다 관계를 맺어야 되는 거예요. 그것이 안 되어 가지고는 안 된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기도를 할 때에, '하나님!' 할 때에, 습관적으로 부르는 하나님이 되어선 안 되는 거예요. 무한한 하나님, 광대 무변한 대우주를 형성해 가지고 그것이 상충됨이 없이 운행하면서, 그 법도와 질서가 몇억만 년이 가도 촌푼도 틀리지 않게 움직이게끔 조종하고 관리하는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과 직결되는 날에는 내가 작지만 위대한 힘이 폭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기도할 때 이 전체를 움직여 가지고 기도한다는, 그 전체 작용의 힘의 요소를 백 퍼센트는 못 받더라도 1퍼센트씩이라도 골고루 내 자체에 임하고 있다고 하는 그것이 필요하다구요.

그러면 사람은 뭐냐? 대우주의 축소체입니다. 여러분이 소우주입니다, 소우주. 대우주는 뭐냐? 대우주는 피조세계인 것입니다. 대우주의 원천은 힘의 원천입니다. 작용의, 힘의 원천이 뭐냐? 하나님입니다. 나는 대우주 앞에 선 하나의 소우주로서, 대우주의 끊임없는 힘의 원천이 되는 그 힘이 내 마음에 들어옴으로써 이 대우주와 상응적인 상대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뭐냐 하면 우주의 꽃이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알겠어요? 하나의 나무로 비유하게 되면, 대우주라는 큰 묘목이 있는데, 그 묘목 가운데 인간이라는 것은, 나라는 것은 하나의 꽃과 같다는 것입니다. 숫꽃, 암꽃이 있는데 원칙적 조화의 작용이 벌어져 씨앗을 만드는 거와 마찬가지로, 남자 여자가 우주의 꽃으로 피어 가지고 향기를 풍기는 때가 사춘기 시절입니다.

가정을 가졌으면 그 가정이라는 것은 이러한 꽃향기를 통해 가지고, 그 모든 존재를 축소시킨 하나의 사랑을 통해 가지고 사위기대 완성을 통해서 비로소 우주 전체 존재 앞에 작지마는 수정체와 같은 하나의 소가정을 이루어 가지고 나타납니다. 본질은 마찬가지입니다. 이걸 빠개보면 하나님의 소성이 있습니다. 남자 여자에게도 하나님 소성이 있고, 자녀들에게도 하나님의 소성이 있습니다. 그걸 파고파고 들어가게 되면 하나님의 생명이 연결돼 있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말미암아? 사랑으로 말미암아.

부부가 합해 가지고 힘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은 사랑이 묶어 주는 사랑의 힘이예요. 사랑이 묶어 주는 힘에 의해 가지고 부부는 강할 수도 있고, 약해질 수도 있다 이거예요. 생명력을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은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란 것에서부터 하나님과 연결되는 거예요. 그러니, 대우주의 근본 되시는 하나님이 사랑을 중심삼고 주관하는 모든 대우주의 힘의 작용에 주류적인 요소를 연결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이 사랑이 작용하게 되는 날에는 대우주가 움직입니다. 자극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내가 돼야 합니다. 그러한 자각이 필요합니다.

석가 같은 사람은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 했지요?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경지에 들어가 가지고 꼭 누르니 우주가 웃는다 이거예요. 내가 작동하는 대로 움직인다 이거예요. 놓으면 안 움직이고, 누르면 움직인다 이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세포, 손의 털끝 하나 까딱해도 벌써 안다 이거예요. 털끝 하나만 까딱해도 전신이 압니다. 그럴 수 있는 하나의 세포면 세포, 하나의 지엽(枝葉)이면 지엽(枝葉)으로서의 존재의 자각을 가져야 돼요. 그것이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