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5집: 해방권에 선 통일가족 1986년 06월 01일, 한국 통일동산 (구리시 교문동) Page #317 Search Speeches

구원섭리의 '심은 잃어버린 아담 해와를 찾" 것

그러면 오늘날 타락된 인간에게 있어서 소원이 뭐냐? 소원이 뭐냐?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타락되었기 때문에 고장이 났다구요. 고장나지 않았으면, 본래 블루프린트대로, 본래 생산한 대로 나오게 되면 참신하고 완전한 완성품이 되는 것인데 타락으로 말미암아 미완성품이 돼 버렸다 이거예요. 미완성품이 돼 버렸으니, 블루프린트에 따라 완성품의 모든 조건을 구비시키지 않고는 이 우주에 이상적인 주체적 인간으로 내세울 수 없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사탄과 하나님의 싸움이 벌어진다 이거예요. 본래 하나님은 싸우는 하나님이 아니예요. 그리고 하나님 앞에 싸움의 대상자로 나타날 자가 없어요, 본래. 악마가 오늘날 인간세계에 착륙하게 되고 침해하게 된 동기는 하나님에게 있는 게 아니예요. 어디까지나 우리 인류시조가 잘못된 연고로 이런 비통한 일이 벌어졌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건 전부 다 폐물이예요, 폐물. 쓰레기통에 던져 버려야 돼요.

던져 버려야 할 텐데 인간 아담 해와는 하나님의 참된 사랑을 중심삼고 영원한 존재성으로 지었다는 원리가 있기 때문에, 사랑 이상을 영원히 대할 수 있는 원리원칙을 중심삼고, 첫사랑을 중심삼고 영원까지 시작해야 할 원칙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그런 일을 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아담 해와가 타락했을망정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세웠던 그 원리는 포기할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재차 아담의 완성기준을 편성하는 놀음을 하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까지 타락한 이후 수만 년 역사를 거쳐왔다구요. 여기 성경 역사를 뭐 6천 년, 7천 년 하지요. 그거 수십만 년으로 잡는 거예요. 그 기나긴 세월 가운데 하나님이 뭘해 나왔느냐 하면, 완성된 아담 창조를 해 나온 거예요. 맨 처음 아무도 없을 때 아담 창조하는 건 그건 순식간에 할 수 있지만, 아담의 재료를 이 세상에서 다시 수습해 가지고, 타락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의 요소들을 모아 가지고 아담 하나의 재창조 역사를 한다 이거예요. 그러려니 다른 수많은 문화배경과 역사시대의 복잡다단한 투쟁 역사를 지내 오는 그 과정에서 선한 사람들을 엮어 가지고 선의 판도를 넓혀 가면서 이상적인 아담 한 인물을 창조하기 위한 놀음을 해 나왔다 이겁니다.

그게 뭐냐? 그것은 역사시대에 있어서 끝날입니다. 아담의 창조가 완전히 끝났다 할 때가 끝날이예요. 역사의 끝날이 오는 거예요.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말하기를 '주님이 오면 세상을 다 없애 버린다' 합니다. 아니예요. 하나님은 구원섭리를 하는 하나님이예요. 구원섭리의 중심은 잃어버린 아담 해와를 찾기 위한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에덴동산의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전부 다 주체 대상 관계입니다. 두 감람나무라든가 석판도 둘이고 모든 게 둘이예요. 광야에서의 불기둥 구름기둥도 둘이예요. 성경역사에 주체적으로 나타난 모든 대표 상징형은 아담 해와를 상징했다는 거예요. (녹음이 잠시 끊김)

아담을 사탄세계에 승리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놓아야 됩니다. 그게 교본이예요. 그게 교본인데 사탄 마귀와 통하는, 사탄에게 필요한 아담이 될까봐 그걸 전부 다 비밀로, 암시로, 비유로 가르쳐 주었다는 거예요. 하나님만이 악한 세상에서 아담을 만들어 나가는데, 여기에 침해되는 어떤 조건도 허용하지 않기 위한 방비책으로 전부 다 암시로, 비사로 가르쳐 주며 나왔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끝날에 하나님의 뜻을 누가 완전히 아느냐 하는 게 문제예요.

아담이 타락하지 않고 완성하였다면, 아담에게 하나님이 내재해 가지고 하나님이 아는 거와 마찬가지의 입장에서 아담이 마음을 통하여 알 수 있는 자리에 설 수 있다구요. 그러한 아담 실체, 아버지, 부모의 실체기준을 다시 세우고, 역사시대에 아담을 통해 가지고 들어가서 이루려던 것을 역사 이후에, 복잡다단한 이 사망의 세계를 전부 다 수습해 가지고 역사 이후에 아담이 세우려 하였던 본래의 기준을 재차 편성해 가지고 이 세계를 새로이 출발시키겠다 하는 것이 끝날이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