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집: 한을 남긴 책임분담 1972년 10월 22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332 Search Speeches

탕감복귀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책임분담을 할 수 -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의 사상은 개인완성 터전 위에서 가정을 소망하고 나오는 것입니다. 신랑 신부의 이념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 신랑 신부는 어떠한 사람들이냐?내 아들딸만을 사랑하는 신랑 신부가 아닙니다. 자기만을 위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세계를 대표 하고, 국가를 대표하고, 민족을 대표하고, 종족을 대표하고, 가정을 대표하고 나선 공적인 입장에 선 신랑이요 신부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기독교의 신앙이 얼마나 원칙에 어긋난 자리에 섰느냐 하는 것을 자각해야 된다구요. 내가 믿고 천당 가겠다고? 그렇게 돼 있어요?천당은 나중이라구요. 탕감복귀 완수해 가지고 책임분담 완수하고 난 후에 천당이지, 먼저 해야 할 것이 책임분담이라구요. 먼저 해야 할 것이 탕감복귀라구요. 그러고 난 후에 천당이지, '아, 책임분담은 나하고 관계없고 탕감복귀는 나하고 관계가 없어, 그것은 다 이방 사람 앞에….' 그렇다면 하나님이 6천년간 수고할 필요도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식구는 이걸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통일교인 각자는 세계적인 자각을 하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천주적인 자각을 하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내 속에 국가가 있느냐?그 국가는 망할 수 있는 국가가 아녜요. 흥할 수 있는 국가관을 가져야 됩니다. 그가 생각하는 이상세계라는 것은 망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라, 망하지 않는, 책임분담을 완성한, 하늘의 영광을 당당히 대신할 수 있는 세계 입니다. 그런 세계관, 사상을 통한 세계관을 추구하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과연 여러분들이 탕감복귀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책임분담을 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할 수 있다? 「없다」 없습니다. 이걸 확실히 알아야 되겠다구요.

탕감복귀의 소원의 한계점이 어디냐?어디예요?개인을 중심삼고 복귀하는 거예요?개인복귀예요?개인복귀 했더라도 가정을 못 넘으면 망하는 거라구요. 그것은 이스라엘 역사가 여실히 증명하는 사실입니다. 120년 동안 수고한 노아도 일시에 걸려 넘어갔어요. 안 넘어갔어요?걸려 넘어갔다구요. 아브라함도 일생 동안 수난의 국경을 넘으면서 집시의 조상이 된 입장에 섰지만, 한번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걸려 넘어갔어요. 안 넘어갔어요?넘어갔다구요. 모세가 반석을 잘못 침으로 말미암아 걸려 넘어갔어요. 안 넘어갔어요?그걸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세례 요한도 마찬가지요. 예수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것은 알지 못해도 걸리는 것이요. 알고도 행치 못하면?걸려요. 안 걸려요? 「걸려요」 알고 행치 못해도 걸리는 것이요. 알지 못하고 행치 못해도 걸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알고 행치 못해서 걸리는 것보다도 모르고 행치 못해서 걸리는 것이 못하다? 「낫다」 그건 아는구만, 그러니 '차라리 원리를 몰랐으면 좋을 뻔했다' 는 거예요. 행치 못할 때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죽을 각오를 해야 된다는 거라구요. 그래서 성경에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고 했습니다. '나를 따르려면 자기를 이기고,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를 따르지 않으면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자기를 이기라는 것이 뭐예요?뭐 밥 먹는 것을 이기라는 거예요?고통의 길을 이기라는 거예요?아닙니다. 아니예요. 생명을 이기고 나서라는 거예요. 알겠어요?타락한 세계에서 이어받은 생명을 이기고 나서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생명을 죽이는 자리에 들어가는 사람은 새로운 생명의 출발을 볼 수 있는 거라구요. 그거라구요. 그거라구, 그러지않고는 가지 못한다구요. 그런 진정한 의미의 내용에 입각한 참다운 신앙자를 하나님이 지금까지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수천 년의 한스러운 역사를 연장시켜 나왔던 것이 아니냐?

이런 관점에서 볼 때, 4천년 역사를 중심삼고 오직 예수님 한 분만이 그러한 사상을 갖고, 그러한 심정과 일치된 사상을 가지고 실천하면서 당당코 자신있게 갔기 때문에, 여기서부터 영적이나마 하나님의 세계를 수습할 수 있는 개인의 길, 가정의 길, 국가의 길, 세계의 길을 맞이하였던 것이 아니냐, 그것이 영육을 중심삼고 완전히 완결짓지 못했기 때문에 재림이라는 내용을 중심삼고 재차 전개해 가지고 이것을 탕감복귀하고 책임분담을 하라고 세계 완성을 표준해서 보낸 것이 재림주님입니다. 이것이 사명이 아니겠느냐?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한많은 책임분담의 노정을…. 통일교회를 믿는 여러분들이 '아! 책임분담을 완수하겠다. 우리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것처럼, '5퍼센트의 책임완성이다' 하는 생각을 하루에 몇 번이나 해요?5퍼센트의 책임 완수하겠다 하는 생각을 하기 전에 그것을 하려면 반드시 탕감복귀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탕감복귀하는 데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제물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문선생이 지어낸 말이 아니라 역사적인 내용이 그렇게 돼 있으니 틀림없는 사실이 아니냐는 거예요?

자, 이 나라가 망하게 될 때, 망하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나라를 위하여 희생하는 무리가 없어 가지고는 망하는 나라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생겨날 수 있어요?절대 없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망하는 인간이 다시 희생되기 위해서는,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제물의 과정을 기어이 거쳐 나가야 된다는 거예요. 눈물을 흘리고 땀을 흘리고 피를 흘리는 그런 역사가 없어 가지고는 되짚어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연법도라구요. 물에 빠진 자가 나오려면 빠질 때의 힘 이상의 힘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지요?그러려면 누군가 대신 죽는 이상의 힘을 투입 하지 않는 한 살릴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