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6집: 위하는 길 1983년 05월 01일, 한국 리틀엔젤스예술회관 Page #327 Search Speeches

천운을 탈 수 있" 길은 큰 것을 위해 희생하" 데 있어

그러면 천운이 갈 수 있는, 천운을 이길 수 있는 개인적 운세가 천운을 따라 개인의 운세를 세우고, 천운을 따라 가정의 운세를 세우고, 천운을 따라 사회의 운세를 세우고, 천운을 따라 국가의 운세를 세우고, 천운을 따라 세계의 운세를 세우고, 나중에는 하나님이 이상하시는 행복의 세계로 연결할 수 있는 그 길이 제멋대로 되어 있겠느냐? 아니면 고착된 어떤 공식노정이 있느냐? 이건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럼 불행은 왜 있느냐? 천운이 가는 방향에 일치되지 못하게 될 때 불행하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돌아가서 공자님이 하신 말씀을 두고 보더라도, 위선자(爲善者)는 천보지이복한다, 하늘이 복을 갖다 준다, 위불선자는, 위불선자라는 말은 위악자(爲惡者)라는 말입니다, 천보지이화다 이거예요. 여기서 선악의 문제가 나오는 것입니다.

도대체 선이 뭐고 악이 뭐예요? 이거 근본 문제예요. 선이 뭐예요? 여기 윤박사님이 계신데 선생 되시는 분은, '내가 학교에 나가 가지고, 일과에 맞춰 학과에 따라 강의하면 되지. 내가 죄 안 짓고 양심의 가책받을 게 없으니 나는 선한 사람이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한 선이냐? 이게 문제입니다.

악은 뭐냐? 선악의 경계선이 어디냐 이거예요. 이제 근본문제에 들어가요. 선한 사람, 악한 사람의 경계선이 어디냐? 선한 사람은 일반인들이 알기를 운의 길을 가고 있다, 복받을 수 있는 길을 가고 있다고 하고 하늘이 알아주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공자 같은 분은 높이 올라갔던 분이 아니예요? 성인의 반열에 선 그런 분들이 하늘을 위하였던 것입니다. 위선자는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위불선자는 지옥에 들어가고.

선이 뭐냐? 악이 뭐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그 경계선이라는 것은 딴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 몸에 선악의 분기선이 있는 것을 오늘날 우리는 생각지 못한 것입니다. 아무리 선하고 싶어도, 내 자신이 있는 그 자리가 악한 자리일 때는 선한 마음이 있더라도 악한 자리에 나가떨어지는 것입니다. 이게 문제예요. 그러면, 선악의 기준에 있어서 선이란 도대체 어떤 것이고, 악이란 도대체 어떤 것이냐?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선이란 보다 공적인 것이고, 악이란 보다 사적인 것이다 하는 결론이 나와요.

왜 오늘날 사회 도덕 관념에 있어서 공사문제를 논하느냐? 어째서 논하느냐 이겁니다. 공적인 것은 다 싫어합니다. 왜 지금까지 인간 도덕의 윤리체제에 있어서는 불가피적으로 대의를 따라가라고 강조하느냐? 그것은 대의가 선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선하면 어떻게 되느냐? 복을 받는다 이겁니다. 왜 복을 받느냐? 천운에 일치될 수 있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악하면 화를 받습니다. 왜?나를 위주하는 데서는 악이 싹트는 것이요, 전체를 위주하는 데서는 선이 싹튼다 이겁니다.

오늘날 우리 몸과 마음을 두고 볼 때 보편적으로 마음이 선합니다. '내 마음에 가책을 안 받아' 이러지요? '내 마음은 발라' 이럽니다. 마음이 바르다는 건 무엇 갖고 하는 말이예요? 그것은 대도(大道)의 기준 앞에 평행선 아니면 직선상에 선 것을 말합니다. 그것을 바르다고 하는 겁니다. 무엇인지 모르게 바른 길이 있다 이겁니다.

여러분은 다 복받고 싶을 겁니다. 여기 뭐 나이 많은 분들, 이름있는 수녀님들, 유명한 박사님들도 많이 모이셨는데, 불경스러운 말이지만 '화받고 싶소, 복받고 싶소?' 이렇게 물어 본다면 거 뭐 물어 볼 거 뭐 있어, 국민학교 학생들처럼?' 하고 불평하면서 속으로 '복받고 싶지'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천운을 탈 수 있는 그 길이 어디 있느냐? 딴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보다 큰 것을 위해서 희생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한 길을 가는 한 천도는 나를 받들고 천운은 나를 에워싸고 찬양한다. 하나님은 나를 위해 정면에서 부른다. 틀림없이 부른다. 방향이 틀렸으면 틀린 것을 가르쳐 주고, 옳았으면 옳은 것을 가르쳐 준다'고 하는 확실한 하나님의 실존을 체휼하지 않고는 정의의 길을 다 갈 수 없다고 봅니다. (녹음이 잠시 끊김)

설명할 내용이 없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구체적인 것입니다. 막연한 관념주의적 기반이 아니예요. 현실적이요, 실증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복잡한 종교문제, 종교, 철학 문제라든가 비교종교학이라든가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그걸 얘기할 시간은 없지만…. 그런 의미에서 오늘 통일교회가 현재 철학세계에 준 영향은 지대하다고 봅니다. 또, 지금까지 신학세계에 있어서 새로운 분야에 방향을 제시하는 데 공헌하고 있다고 저 나름대로 자부심을 느끼는 바입니다.

문제는 어디 있느냐? 잘사는 것, 행복한 것,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럼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이 있다면, 어떤 사람이 악한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선한 사람일 것이냐? 두 사람 가운데 말을 하더라도 '야! 당신 참 아름답소. 미인이요. 훌륭하오. 체격도 좋고, 야, 대통령 되고도 남겠구만' 이렇게 칭찬하는 사람은 선한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고 '이 쌍것' 하면서 피해를 주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이건 우리 생활 실제무대에 있어서, 부부끼리 사는 생활에 있어서 직접 문제가 됩니다.

여기 정박사님 오셨구만. 정박사님 부부도 그럴 거라. 술 잘 드시는 정박사님이 쓱 한잔 하시고 들어와 가지고 '여보 여보, 나 한잔 했수다' 할 때는, 술집에 가서 술 마시고 들어와 가지고 '나 오늘 친구를 만나 가지고 이러이러해서 한잔 했수다' 그럴 때는 정박사가 선한 사람이예요, 악한 사람이예요? 국민학교식으로 훌륭하고 뭐 대학총장이라 하더라도 악한 사람이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먼저 침해하는 자는 악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침해하는 자가 망하기 마련입니다.

1차대전 때도 맞은 녀석이 망했어요, 친 녀석이 망했어요? 친 녀석이 망했지요? 독일. 2차대전도 친 녀석이 망했습니다. 지금 3차대전 운운하는 이 시대에 공산주의라는 색다른 세계주의가 나와 가지고, 세계를 대해서 어떻게 하느냐? 공격하는 거예요. 가만히 있는데 '내 자리 내놔, 내 자리 내놔, 이건 내가 해야 되겠다' 이래요. 그래 가지고 안 주면 총칼로 위협해 가지고 타고 앉아요. 이놈의 자식들! 천리의 대도와 천운이 그들의 모가지를 째까닥 칠 때가 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