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집: 현재의 통일식구 1971년 02월 13일, 한국 용산교회 Page #63 Search Speeches

현재의 통일식구"-게 문제되" 것

여러분이 자기 한 개체를 악에서 구하기가 얼마나 힘듭니까 ?현재의 통일식구에게 있어서 문제되는 것은 뭐냐? 몸과 마음을 중심삼아 가지고 '나' 하나를 완전히 해방시키는 일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어렵고, 그 싸움이 얼마나 치열하냐? 이 싸움은 미소가 서로 경쟁하며 하는 싸움과는 비교가 안 됩니다. 민주 세계와 공산 세계가 싸우는 것은 문제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보다도 더 힘들다는 것입니다. 이 싸움은 우리 개체로부터 기원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개인에게 두 패가 있어서 싸우는 거와 마찬가지로 가정도 두 패요, 사회도 두 패요, 국가도 두 패요, 세계도 두 패인 것입니다. 이것을 족보로 따지자면 하나는 악의 개인이요 악의 가정이요 악의 사회요 악의 국가요 악의 세계이며, 또 하나는 선의 개인이요 선의 종족이요 선의 국가요 선의 세계입니다. 이렇게 딱 갈라졌습니다. 한편은 하나님을 위주로 한 종교권내에 서 있는 편이요, 다른 한편은 하나님을 부정하는 물질권내에서 있는 편입니다. 사람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몸뚱이는 인륜 도덕이니 양심의 도리니 하는 이와 같은 모든 것을 전적으로 부정합니다. 개나 돼지와 마찬가지로 내가 더 먹어야 되고, 내가 좋아야 되고, 내가 편안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인륜도 도덕도 없습니다. 이러한 사조가 공산사회를 중심삼아 시작되어 가지고 민주 세계까지 영향이 미쳐져서 현재의 민주세계의 청년들이 이 풍조에 휩쓸려 육의 만족만을 위한 최고의 행락을 그려 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육의 행락이라는 것은 제한되어 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인연, 어떠한 고차적인 인연을 중심삼아 세계성을 띠고 인간을 초월적인 경지로 몰아넣을 수 있는 무한대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육의 감정의 한계권내에서 놀아나는 것이기 때문에 지내고 보면 허무만 남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의 세계는 무한합니다. 마음의 세계가 얼마나 크냐 하면 하늘땅보다도 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의 세계가 넓다면 하늘땅 보다 넓고, 마음의 세계가 깊다면 하늘땅보다 더 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몸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선진국가의 젊은이들을 볼 때에, 미국 같은 데 가 보면 히피족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내들은 인생을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사회니 국가니 세계니 도덕이니 하는 그런 것은 전부 우리에게 필요없는 것이다. 인간은 행락을 위주로 해 가지고 몸뚱이가 원하는 대로 살면 된다'는 것입니다. 또, 자기들 멋대로 자유를 부르짖다 보니 국가의 어떠한 간섭이나, 사회의 어떠한 법도적 조건이 가담된 자유를 원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가정이면 가정의 가법을 중심삼고 부모의 어떤 조건적 제시권내에 있어서 제약을 받는 자유를 원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기 맘대로라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몸뚱이가 하자는 대로 하다 보니 전체를 부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행락을 바라는 그들의 몸뚱이가 무한한 초월경지의 감정을 유발시키지는 못합니다. 몸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반드시 오래 가지 않아서 싫증납니다. 요즈음 유행되는 것을 봐도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미국에서 째즈곡 같은 것들이 유행해 가지고 이상한 춤도 추고 하는 패들이 많이 있었지만, 이제는 새로운 풍조로 클래식 음악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육을 위주로 한 감각적인 만족이라는 것은 지극히 순간적인 것입니다. 육이 오관을 통해서 느끼는 감각은 제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잘먹고 기쁠 수 있는 감정, 즉 환경을 중심삼고 느끼는 감정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무한할 수 없습니다. 입체적이 아닙니다.

그러나 마음의 세계에서 오는 평화라든가, 마음의 세계에서 오는 자극이라는 것은 육을 중심삼은 자극에 비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음이 얼마나 크냐? 마음의 크기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의 욕망은 큽니다. 욕망이라는 것은 몸을 위주로 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마음을 위주로 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 소원이 무엇이냐'고 하면 남자나 여자를 막론하고 대한민국을 내 것 만들고 싶다. 세계를 내 것 만들고 싶다.' 하는 것입니다. 또 '천지를 창조한 그런 주인이 있으면 그 주인도 내 것 만들고 싶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내 것 만들고 싶다는 것은 몸뚱이가 원하는 거예요? 몸뚱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마음은 큰 것과 더불어, 굉장한 것과 더불어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이 기뻐할 수 있는 때, 마음이 기뻐할 수 있는 곳, 마음이 기뻐할 수 있는 자리는 어디냐? 잘먹고 잘사는 것, 몸뚱이가 추구하는 그런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몸은 그저 좋은 것 먹고, 좋은 데서 살면 좋아하지만 마음은 차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나 홀로 있을 때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홀로는 아니예요. 세상에서도 그렇지요? 몸뚱이를 중심삼고 기쁘고자 하는 데에도 남자면 남자 혼자는 안 되는 겁니다.

젊은 남녀들이 행락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 혼자 가요? 남녀 관계를 중심으로 그것을 최고로 하다 보니 난장판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일대 일의 남성과 여성으로서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에는 지금 어떤 풍조가 벌어지고 있느냐 하면, 두 부부끼리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를 서로 교환해 가면서 사는 이런 풍조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만족을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무리 해봤자 거기에서 만족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허망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소원의 터전으로 해서 그 자리를 행복의 자리로 영원히 파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실컷 그렇게 하고 나면 허무하기 때문에 그것을 제거시키고 차버리고 싶은 결과로 몰려 들어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