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집: 우리의 갈 길 1971년 02월 18일, 한국 동대문교회 Page #334 Search Speeches

천정을 가르쳐 주-던 예수 그리스도

이렇게 볼 때 인간들은 서로 정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하고 사람하고 정을 붙일 수 있는 길이 있을 것 같아요, 없을 것 같아요? 이것이 문제입니다. '사람이 최후에 세워야 할 목적을 인간을 중심삼고 하지, 왜 하나님을 중심삼고 세우려고 하느냐'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진짜 있어서 그분하고 인간하고 정을 주고받을 수 있고, 불쌍히 여기고 불쌍히 여김을 받을 수 있는 정서적인 기대가 서면, 하나님하고 인간하고 하나될 수 있겠어요, 없겠어요?「될 수 있습니다」 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천정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종교에서는 천정에 대해서 모르고 있습니다. 불교도 천정에 대해서 모릅니다. 천정이 있는지 없는지 막연하다는 거예요. 유교도 막연하다는 것입니다. '위선자(爲善者)는 천보지이복(天報 之以福)하고 위불선자(爲不善者)는 천보지이화 (天報之以禍)니라' 하고 천(天)을 가르쳤지만 확실히 모른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이 아니라는 거예요. 천륜은 가르쳐 줬지만 천정은 못 가르쳐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천륜은 있지만 천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하나님과 더불어 살림살이하는 재미있는 행복의 터전을 어떤 종교 세계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만은 이것을 알았습니다. 기독교만은 '하나님은 내 아버지다'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란 말이 뭐예요? 관계가 있다는 말이예요, 없다는 말이예요. 아버지하고 아들이라면 부정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어요? 이건 절대적인 인연입니다. 되고 싶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누가 여기에 흥정을 하고 가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적인 것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예수님이 말을 잘했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내 아버지다…. 세상 친지에서 이런 말을 한 사람은 예수님이 처음입니다. 기도하는 내용을 봐도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인(人)을 위주한 사고방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중심한, 천을 위주한 사고방식입니다. 이런 사고방식으로 참다운 인생의 목적을 모색한 대표적인 분이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은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다' 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도 괜찮은데, 거기에 또 독생자라고 말했다는 거예요. 독생자는 뭐예요?「외아들입니다」 외아들이니까, 부모의 사랑이 다른 어디로 흘러갈 곳이 있어요?「없습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을 몽땅 독차지한다 이겁니다. 그런 의의에서 예수님은 독생자라고 한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예수님이 욕심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또 나는 신랑이고, 너희는 뭐라고 했어요「신부요」 신랑 신부라고 하는 것은 뭘 하자는 거예요? 너희는 나를 찾아올 때 나를 신랑으로 생각하고 찾아오라는 것입니다. 그래 신랑으로 생각하고 찾아가는데 뭐가 있어야 돼요? 정서적인 내용이 있어야지요? 정서적인 내용이 구비되어 있지 않으면 시집이 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 시집이 새색시 집이예요? 신(新)집이라서 시집이예요? 거기에 무엇이 앞서야 돼요? 자기 얼굴이 앞서야 돼요. 신랑을 위하는 정서적인 분야가 앞서야 돼요? 그래 무엇이 앞서야 돼요?「정서적인 분야가 앞서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