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7집: 미국에 있어서의 3년과 오늘 1973년 07월 01일, 미국 벨베디아수련소 Page #254 Search Speeches

기독교와 아시아 삼개국을 통한 영적 국가기반을 이루-어야

이 길을 닦아 나온 것이 우리 통일교회가 걸은 1차 7년노정으로부터 2차 7년노정입니다. 2차 7년노정도 5년을 지내고 6년째의 절반을 넘어서는 시점에 놓여 있는 거라구요. 이 기간에 한국에서 한 것은 뭐냐 하면, 국가적 기준을 중심삼고 기독교와 연결시키는 일이었습니다.

기독교는 영적인 가인이기 때문에, 우리는 영적인 아벨로서 한국에서 영적 면으로라도 국가적 승리의 기반을 어떻게 닦아 나오느냐 하는 것이 여기(미국) 오기 전까지의 사명이었다구요. 또한 이것이 투쟁의 목표였다구요. 한국에 있어서 통일교회와 기성교회를 비교해 볼 때, 우리 통일 교회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당당한 입장에 있습니다. 오히려 살아 있는 것은 통일교회고, 그 외의 종교는 죽었다 이겁니다. 이렇게 보는 거라구요. 이럴 수 있는 기반을 닦아 왔다구요.

여기 오기 전까지 예수 시대의 유대교 교직자들과 같이 기독교 교직자들이 반대하는 것을 방비하고, 반대하지 않는 패를, 우리를 지지하는 패를 만들어야 되겠기 때문에 목사들을 초청해 강의하는 일을 한 거예요. 그리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도리어 현재의 기성교회가, 가인적인 기성교회가 위협을 받을 수 있는 단계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면서 또 한국을 중심삼고 일본과 중국, 즉 대만, 이 삼개 국을 횡적으로 연결하는 내용의 싸움을 준비해야 된 것입니다.

한국은 아담 국가이기 때문에, 주체적인 국가이기 때문에 상대적 해와 국가와 천사장 국가형을 횡적으로 만들어 놓지 않고서는 이 미국까지, 세계적 기반까지 닦아 나올 수 없었다는 거예요. 선생님은 한국에 대한 책임도 물론 해야 되지만, 일본에 대한 책임도 해야 되고, 중국에 대한 책임도 해야 된다는 거예요. 이것이 1971년까지, 여기 오기까지의 선생님의 노력이었습니다. 내적인 면에서 조건적인 기반을 중심삼고 연결시키는 책임을 다해 왔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한국을 중심삼고 영적으로 국가적 기준을 연결시키는 탕감조건적 사명은 선생님이 다했다는 조건을 갖추었다는 거라구요.

자유중국이 선생님의 말을 들었으면 유엔에서 절대 축출 안 당하는 거라구요. 안 당하게 돼 있다구요. 내가 위험을 각오하고 장개석 총통에게 그런 일까지 충고했던 거예요. 장개석 총통한테 직접…. 누구를 통해서? 구보끼를 통해서 했어요. 왜 그러냐 하면, 선생님이 직접 할 수는 없었어요. 아담의 입장에 있는 선생님이 아시아적 천사장 국가인 중국을 직접 대할 수는 없는 거예요. 해와를 통해야 된다구요. 그러면서 일본도 앞으로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내적인 면에서 지금까지 그 최고 간부들한테 눈물을 흘리면서 호소해 온 거라구요. 이것이 국가적 기준에서 평준화될 수 있는 시점이 1971년까지입니다. 1971년까지 완결지었어야 된다 하는 것이 섭리적 관이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