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집: 하늘과 땅이 기필코 찾아가야 할 곳 1965년 10월 10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19 Search Speeches

하나님의 내적인 곡절

오늘날 인류가 찾아가야 할 곳은 어디입니까? 고향을 찾아가야 합니다. 고향을 찾아가서 부모를 만나야 합니다. 지금까지 이상주의니 무슨 주의니 하는 것은 다 그 과정에서 지팡이 노릇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를 만나서 무엇을 할 것입니까? 부모의 참다운 사랑의 인연을 가지고 그 부모의 사랑을 백 퍼센트 받을 수 있는 자녀가 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이 절차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 오시는 분이 재림주이십니다.

만민은 공히 그분에게서 절차를 배우고 그분에게 접붙임으로써 그분의 뜻을 대행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을 참감람나무라고 하시며 접붙임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참다운 부모로 말미암아 참다운 가정, 참다운 종족, 참다운 민족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다운 국가가 문제입니다. 예수님도 나라가 있었더라면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일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가 되어 예수님 앞에 철석같은 효성의 도리를 하였더라면, 로마가 아무리 내리쳐도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중략)

예수가 죽은 후 400년 동안 로마는 사기 등등하여 기독교를 삼키려고 호령했지만 결국은 거꾸로 흡수당했습니다. 예수님이 살았더라면 로마를 40년 내에 정복했을 것입니다.

그러한 예수님 앞에 어찌하여 가정이 없었느냐? 예수님은 본향 땅에서 나의 아버지 어머니라 할 수 있는 부모가 없었습니다. 하늘에 있으면 땅에도 당연히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내가 너희들의 아버지’라고 결정지을 수 있는 싸움에서 승리의 터전을 남기고 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이어받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러지 못한 한을 남겨 두고 가셨기에 해원해야 할 목표를 세워 다시 오셔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억울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중심삼고 역사해 가실 수가 없으며,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이 하는 일을 알아주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찌하여 부모, 즉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하늘의 법도를 친히 가르쳐 주지 못했을까요? 본래 타락하지 않았으면 하나님께서 아담의 부모가 되었을 텐데, 타락으로 말미암아 부자의 인연이 끊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부자의 인연으로서 충효의 도리를 하지 못한 것을 우리가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충의 도리와 효의 도리를 대신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전에는 하나님이 부모의 자리에서 가르쳐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여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시옵소서’ 하며 간구하는 예수의 기도를 하나님은 왜 들어주지 않으시고, 무슨 철천지한이 있었기에 예수님을 죽이지 않으면 구원의 도를 못 세우는 것이었던지….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하신 예수님의 사연은 무엇이겠습니까? 그 무식한 자들, 시대를 모르는 것들은 그저 빵이나 생각하고….

하나님에게 얽힌 내적인 곡절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홀로 감람산 골짜기를 찾아가던 예수님의 서글픈 심정을 여러분은 얼마나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그분이 가는 발걸음 앞에 ‘당신의 심정이 이러하거늘, 저를 권고하셔서 당신의 심정을 위로할 수 있는 효성의 도리를 다하게 하옵소서’ 하는 마음을 갖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오늘 우리들은 그러한 입장에서 다시 한번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땅 위에서 부모를 갖지 못하게 된 타락의 대가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싸우지 않으면 안 될 고비가 남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청산짓기 전에는 부모가 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청산짓지 못하면 하나님의 역사적인 해원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해원을 성사해 놓지 못하고는 인류 조상의 허물을 지울 수 없습니다. 천리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중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