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6집: 중심존재와 전환시대 1976년 03월 07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70 Search Speeches

인간의 이상향은 사'을 빼 "고" 성립 안 돼

생명 자체를 중심삼고 남자 생명을 제일로 하자 하면 여자 생명도 제일로 하자고 합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먼저냐? 여자는 여자가 먼저이지, 남자는 남자가 먼저이지, 그럴 거예요. 뭐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닭이 더 먼저건 알이 먼저건 그건 아무래도 좋다, 물라도 좋지만 둘이 다 죽고 못 사는 것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둘다 그것만 내세우면 뒤 되어도 좋고 먼저 되어도 좋고, 주체가 돼도 좋고 상대가 돼도 좋다 할 수 있는, 공동적으로 다 좋아할 수 있는 영원하고 불변한 그 무엇이 인간세계에 있다면 그건 이상적인 그 무엇일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찾아보면 그것은 생명도 아니라구요, 생명도. 그게 뭐예요?「사랑」사랑이다! 안방 사랑인지 곁방 사랑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래 사랑 좋아하오? 죽을 사(死)자하고 서방 랑(郞)자…. (웃음) 그런 사랑 아니예요?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모든 인간의 이상향을 그리는 데 있어서는 사랑을 빼 놓고는 성립 안 된다는 결론이 나와요. 도대체 사랑을 빼 놓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이상경을 향하여 직행궤도로 안내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게 무슨 길일 것이냐? 공산주의와 같은 투쟁의 길이 아니예요. 사랑의 길입니다. 사랑의 길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무엇을 추구하느냐? 오늘날 철학이 추구하는 것이 '존재가 무엇이냐? 하는 것인데, 그 존재를 알아서는 뭘해요? 원인을 추구하는 것보다는 이유가 뭐냐, 이유가? 왜 존재하느냐? 원인을 아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 이유를 아는 것이 더 필요하다는 거예요. 안 그래요?

왜 존재하느냐? 내가 눈을 이렇게 갖고 입을 갖고 있는 것은 왜냐? 왜 이렇게 됐느냐 이거예요. 이러한 문제를 따지고 들어가게 되면 자기를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돼요. 우주를 위해서, 보다 큰 것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결론이 벌어진다는 거예요.

그러면 존재하는 그 자체가 안착점(安着点)을 가지고 스스로 영원히 공동적인 이상을 그릴 수 있는 하나의 핵심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사랑을 들고 나오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철학 같은 것은 사랑을 모른다구요, 사랑. 존재가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존재론이 큰 문제가 돼 가지고 사유(思惟)에 대한 문제를 제시하고, 논리학은 어떻게 인간이 가치를 느끼느냐 하는 문제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것은 차원이 멀다구요.

그렇지만 그와는 달리 종교라는 것은 사랑을 논하는 거예요. 무슨 사랑?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하면 이것은 변하지 않는 사랑이예요. 그래서 오늘날 문학소설 같은 것을 보게 되면 거기에서 사랑이라는 것을 빼 놓으면 그게 뭐예요? 그것은 거짓말 중에도 미친놈들이 하는 거짓말이라구요. 시가 뭐예요? 시인이 뭐예요? 전부 다 공론에 취한, 망상에 취한 뭐랄까, 사랑 공론가다 이거예요. 그리고 종교생활도 그렇다는 거예요. 종교생활도 그 무엇인지 모르게…. 심정적 유대를 빼 버리면 아무것도 없어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중심존재라는 것은 물론 사람이어야 되지만 사람이 공통적으로 가치시(價値視)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중심삼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개인도 이 중심점은 반드시 생명에 두는 것보다도 사랑에 둬야 된다는 결론이 나와요.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은 우주창조의 기원을 어디에 둘 것이냐? 생명에 두느냐, 사랑에 두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하나님은 자체 생명이 제일 귀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체 생명은 자체만으로서 있을 수 없다 이거예요. 자체만으로서 자체를 자각할 수 없다는 거예요. 어떠한 비준적(比準的)인 대상이라는 존재를 중심삼아 가지고 공동적으로 주고 받는 데 있어서 거기에 차이가 있다든가, 같다든가, 혹은 많다든가 하는 기준을 거기서 찾을 수 있겠기 때문에, 반드시 생명 자체보다도 그 상대적 관계의 어떤 중심적인 그 무엇을 세워야 된다는 입장에서 볼 때 하나님 자신도 사랑을 세우지 않을 수 없다 이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