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집: 심정과 절대적인 신앙 1970년 08월 09일, 한국 부산 동명장여관 Page #109 Search Speeches

그리움과 간절함을 얼마나 느껴 보았"가

문제는 뭐냐? 참이라는 것, 즉 참부모라는 것입니다. 참부모가 무엇이냐? 참부모란 말이 그리 간단한 말이 아닙니다. 제일 무서운 말입니다. 그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모릅니다. 이 참부모라는 말 한마디 때문에 역사가 좌우됩니다. 이 말을 찾아 세우기 위해서 지금까지 수많은 선열들이 희생의 길을 갔습니다. 연속적인 피의 투쟁을 거치고 몸부림치며 절규하면서 소망을 품고 찾아 세운 이름이 참부모라는 거룩한 이름입니다.

참부모 앞에는 참자녀가 있어야 됩니다. 그래, 여러분들이 참자녀가 되었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참자녀예요? 참이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 여러분들이 참자녀입니까?

아이들이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면 누나나 무슨 아줌마 먼저 부르는 것 봤어요? 다른 식구들이 다 있어도 어머니 아버지가 없으면 '아무도 없구만' 합니다. 형제들이 바라보며 '너 왔니' 하는데도 '아무도 없구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 정말 아무도 없어서 그러는 거예요? 그것이 무슨 말이냐? 그 말은 부모만이 자기를 충만하게 채워 줄 수 있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없으면 아무도 없는 것같이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부모와 같은 사람이 되었습니까?

뜻을 중심삼고 생활하는 데 있어서도 '무미건조하고 성의가 없구만' 하는 말을 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을 모시지 않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재미가 있어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심정에 봄절기와 같은 사춘기의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들 중에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눈물 흘려 본 사람 손들어 보십시오. 선생님이 그리워서 눈물을 흘려 보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가짜입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이 보고파서 눈이 물크러지도록 울어 본 적도 많습니다. 그래서 눈을 잘 뜰 수가 없어서 햇빛을 못 볼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도의 길을 열어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기성교회에서는 물론이지만 통일교회 본부에 속해 있는 사람들까지도 선생님이 뭘 하는 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도 선생님이 제일 잊지 못하는 사연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사연을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내가 흥남 감옥에 있을 때에 한 달에 한번씩 미싯가루를 받아 먹었습니다. 감방에 한 30여 명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많이는 나누어 줄 수 없어서 신문지 조각에 한 숟갈씩 퍼 가지고 쭉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렇게 미싯가루를 나누어 주는 날은 잔칫날입니다. 그것은 쇠갈비가 문제가 아닙니다. 거기에서의 콩 한 알은 바깥 세상의 황소 열 마리보다도 낫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체면을 차리고 위신을 내세우는 사람도 콩 하나가 떨어지면 손을 쓱 내밀게 되어 있습니다. 20여 명이 한꺼번에 손을 내밀어 서로 콩을 집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마 그런 경지를 모를 것입니다. 상상할 수도 없을 거예요. 간유에다가 물을 부어서 먹지만 고소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건 왜 그러냐? 몸에 그만큼 기름기가 부족하다는 거예요. 또 생콩을 먹는 데도 얼마나 고소한지 모릅니다. 그만큼 몸에 지방질이 부족하기 때문에 흡수력이 강한 것입니다. 그게 그렇게 맛이 있다는 것입니다. 흡수력의 강한 정도에 따라 맛도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콩한 알이 떨어지게 되면 대번에 그걸 집으러 갑니다. 그것은 생리적 본능입니다. 거의가 굶주린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것을 집으려고 엉금엉금 기어가는 것입니다. 20여 명이 그 콩 한 알 가지고 싸우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걸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니 거기에서 한 숟가락씩 나누어 주는 미싯가루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겠습니까? 자기가 가지고 있는 억천만 가지의 재물이나 대문이 아홉개 달린 기와집보다도 귀하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미싯가루를 나눠 주는 날이 바로 잔칫날입니다.

선생님은 그것이 아깝다고 해서 혼자 먹지 않습니다. 절대 혼자서는 안먹습니다. 이 미싯가루를 이겨 가지고 미싯가루 떡을 만들어서 신문지에 싸서 작업장에 가지고 나갑니다. 먹고 싶은 것을 참고 점심 때까지 금식을 하는데 먹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지 모릅니다. 그래도 그것을 나눠 먹고 싶어서 참는 것입니다.

그 전날 저녁에도 굶고 아침이 일어나서도 굶었으니 땀을 흘리며 일하면서도 종일 그 생각밖에 안 난다는 것입니다. (웃음) 그러다가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 땡' 하고 울리기가 바쁘게 사람들은 재빠르게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 공장은 크기 때문에 제 1작업장과 제 2작업장으로 나누어져 있고, 큰 비료산이 몇 개씩 있습니다. 작업시간에는 거기에서 일을 하지만 쉬는 시간 15분 동안만은 거기가 천국입니다. 그 세계의 생활이라는 것은 체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이러한 체험은 억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것은 피눈물로 얼룩져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생애의 모든 것을 투입해야 하는 세계가 바로 그 세계입니다.

선생님이 그때의 일을 생각해 보면 아직도 우리 통일교회는 그러한 심정으로 활동해 보지 못했습니다. 여러분과 내가 그렇게 하면서 살아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못 살아 봤으니 살아 봐야 되는 것입니다. 천리길도 멀다 하지 않고 아버지의 뜻을 위해 싸워 나가야 합니다. 아버지의 뜻을 위해 일생의 수고도 일순간에 잊어버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게 아니예요? 그러지 못하면 섭리역사가 6천년으로 연장되고 6만년으로 연장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6천년 동안 인류를 대해서 수고해 나오신 아버지의 심정의 뒷면에 무엇이 감추어져 있느냐? 이것을 풀어 놓고 줄 수 있는 아들이 있다면 아버지의 기쁨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천국은 거기에서부터 이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언제 그런 입장에서 선생님을 위해 봤습니까? 선생님이 형무소에 있을 때에 선생님을 찾아다니던 일을 생각해 보세요. 그때는 서로가 면회를 하겠다고 줄을 지어 가지고 야단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늘 가져야 합니다. 사실 감옥이 어떤 곳인가를 생각해 보면 결국 이세상도 자연적인 형장이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전부다 사형선고를 받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뜻길을 가는 우리 통일교회 신도들에게는 뒷받침이 든든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발전할 수 없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여러분 앞에 무엇을 잘해 줄까 하는 것을 놓고 노력해 나왔습니다. 선생님은 여러분 앞에 빚을 안 지려고 합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러분 앞에 줄 수 있는 자세를 갖추고자 하는 것이 선생님의 기도 제목입니다. 기도를 할 적마다 빚지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하나님께서 한 많은 세대를 거쳐 나를 찾아 전체적인 책임자로 책정해 세우셨으니, 내 생애노정에 있어서 결코 남한테 빚지지 않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했습니다. 이 나라한테도 빚지지 않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에게 빚졌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빚을 여러분한테 지웠다고 생각합니다. 한번밖에 없는 생애인데 왜 빚을 지고 삽니까?

어느 때든 남에게 빚을 지우면 지웠지 빚을 지지는 않습니다. 그래야 천군이 될 수 있고 천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앞으로는 세상 사람들에게 이러한 심정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