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0집: 국제과학통일회의와 학계의 기반 1987년 12월 04일, 한국 한남동 공관 Page #283 Search Speeches

출발지를 알고 출발지로 돌아갈 줄 알아야 발전해

등산할 때, 산 하나를 올라가는 것이 마지막이 아니예요. 지금은 초반이예요, 초반. 우리가 가야 할 길의 초반입니다. 남북대결이 남아 있어요. 산에 올라갈 때 기운 다 빼지 말라는 거예요. 제2봉을 오르고, 제3봉, 제7봉까지 넘어가야 할 것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아시아 문제라든가 하는 것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힘을 전부 다 투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난 나로서 다 책임했다구요, 나라에 대해서. 대한민국에 대해서 나는 책임을 다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어느 누가 나에 대해서 책임 못 했다는 사람은 나서서 얘기해 보라는 거예요. 그렇게 보는 거예요.

나는 양심상 하나도 가책을 안 받아요. 이 이상 어떻게 하겠어요? 이번에 와서 내가 돈을 많이 썼습니다. 임자네는 모르지만. 어렵다고 해서할 것 못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게 일본이 야단하고, 영감상법(靈感商法)이라 해 가지고 두들겨 맞고 했지만 지금까지 대회도 하나도 축소 안 시켰습니다. 다 그냥 끌고 나왔어요. 끌고 나오는 것이 쉬울 것 같아요? 일하는 녀석들은 그런 고충은 못 느끼고 의당히 그럴 줄 알고, 그렇게 생각한다구요. 돈을 쓰면 좋지요, 그 돈을 누가 벌어 대요? 쓴 돈은 누가 책임을 져요? 손대오, 어디 갔나? 「방에 좀 올라갔습니다」 올라갔어? 살림은 높였다가 낮추기 힘들어요. 그건 어리석게 사는 사람들입니다. 잘산다고 생활수준을 높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기준을 중심삼고 아들딸이라든가 따라가는 사람이 전부 다 그 기준에 맞추려고 합니다.

이 녀석들, 내가 차를 사 주고 이랬더니 그 차를 똥차같이 생각해? 그 차 하나 사기에 얼마나 많은 사람의 피땀이 어려 있는데 말이야. 밥 먹을 때 밥술을 들기가 어려운 입장에서 눈물을 흘려야 할 입장인데 말이야. 이런 배후를 나는 속속이 잘 아는 사람이라구. 이 녀석들, 그만큼 사는 것도 감사하게 생각지 않고 뭐 불평이나 하고….

내가 없더라도, 내가 하나도 안 대주더라도 이 길을 가야 될 게 아니냐. 밥을 얻어먹으면서라도. 그걸 언제나 생각해야 돼요. 언제나 생각해야 된다구요. 내가 떠난 출발지가 어디라는 걸 반드시 알아야 돼요. 내가 미국에 가서 요즘에 이스트 가든에 집을 새로 입주하고 다 그랬지만 나 그 집에 대해 관심이 없다구요. 일반 사람이 보면 '아이구 좋은 집에 사는구만' 한다구요. 대번에 종교지도자로서 평을 받는 것입니다. 내가 본래 그 집을 지으려고 했어요? 미국 교회에서 자기들이 지어야 된다고 해서 발벗고 나서서 몇 년 하다가 집어던지니 할 수 없이 내가….

그 집 짓는데 내가 돈을 대주려고 생각한 사람이 아니예요. 7년, 8년 이렇게 하니 전부 다 똥개 되고 소문이 나서 문을 닫게 되니 할 수 없이 손을 대서 만들었지요. 선생님 생각은 그거예요. 언제든지 나는 집이 문제가 아니다 이거예요. 출발 당시로 돌아갈 줄 아는 사람입니다, 출발 당시. 출발 당시로 돌아갈 줄 모르는 사람은 꺼져 가는 것입니다. 흘러가는 것입니다. 세상은 전부 돌아가면서 발전하는 것입니다. 차바퀴가 돌아가야 빨리 가잖아요? 마찬가지라구요. 우리 통일교회에 젊은놈들이 나와 가지고 옛날 그 이상이 돼야 좋아하고, 그 이하는 안 되겠다고 그럽니다. 그래서 내 이번에 배치할 때도 전부 다 거꾸로 배치한 거예요. 저 고대에 배치할 때 김봉태를 책임자로 세웠어요, 거기에 자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녀석들 제치고, 유종영이 누군가? 박주용, 불평했지? 「백의종군했습니다」 무엇이? 불평하지 않았어, 마음으로? 「백의종군했습니다」 백의종군은 무슨 백의종군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