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집: 하늘이 원하는 책임자 1969년 11월 02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17 Search Speeches

마음의 지향성과 인간의 가치

그러면 그 양심은 어찌하여 내 자체를 이렇게 재촉하는가? 그 양심은 그런 방향을 원함과 동시에 `나'를 향하여 악하라고 재촉하는 것이 아니라, `선하라' `참되라' 혹은 `모든 사람이 추앙할 수 있는 중심이 되라'고 매일같이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반대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몸인 것입니다. 이 몸을 여기에 백방으로 상대를 이루지 못하고 하나에서 열까지 백방으로 반대가 됩니다.

이렇듯 마음이 돌아가는 방향이 오른편이라면 몸이 돌아가는 방향은 그 반대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마음이 도는 방향이 오른편이고 몸이 도는 방향이 그 반대라 할 때, 마음과 몸이 상충되는 환경 속에서 어느 정도만큼 몸을 바른쪽으로 돌려 놓았느냐 하는 것이, 그 사람이 태어나 일생 동안 살다가 운명하기 직전에 남겨 놓을 수 있는 인격이 되고 가치가 되는 것입니다. 그 가치를 중심삼고 역사가 흐르는 방향 앞에 얼마만큼이라도 플러스되는 내용을 남겨 놓았다고 할 때에, 그것은 그 사람이 천법과 천도에 의해서 선한 기준을 이루어 놓았다는 결과가 되는 것이요, 책임을 수행했다는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철이나 성인의 반열에 동참한 사람들은 자기 민족만을 중심삼고 살지 않았습니다. 자기 민족만을 위하는 사람은 성현이 되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은 역사를 넘어서 천륜이 바라는 하나의 세계를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랜 역사시대를 두고 후대가 그 사상을 추앙할 수 있는 내용을 지니고, 실질적인 생활을 통하여 계대를 이어 지상에 인연을 맺어 놓은 그런 사람이 될 때, 성현이라는 이름을 남기는 것입니다. 1세기 혹은 수 세기, 혹은 수십 세기, 수천 년 역사가 그로 말미암아 인연되어진 입장에 서게 될 때에 그는 역사적인 성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가 구상하고 주장하였던 거룩한 뜻이 현실사회나 온 세계적으로 얼마나 전개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가 내적인 세계를 추구하면서 소원하던 것이 그 당대에 성공하지 못했더라도 역사시대에 얼마나 책임적인 가치로써 남아졌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로 세계사를 중심삼은 그 사람의 책임을 타진해야 합니다. 그 타진의 결과는 그 사람의 인격의 비중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여러분도 알다시피 예수는 민족에게 몰리고 쫓기다가 사라져 간 한 청년에 불과한 것입니다. 30세가 갓 지난 한 젊은이로 십자가에 달려 죽은 그의 생애는 비참하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 누구도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전부다 손가락질했습니다. 자기 부모마저도 사랑하는 내 아들이라고 달려가 품어 줄 수 없는 부끄러움의 자리에서 사라져 간 예수, 갈릴리 해변을 거닐던 그 예수가 오늘날의 세계적인 문화세계를 창건하게 되리라는 것을 그때, 그 시대에는 꿈도 못 꾼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가 어떻게 해서 그럴 수 있는 결과를 세계에 남겼느냐? 우리 인간이 해야 할 책임의 원인은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예수는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하나님이 원하는 그 뜻, 하나님이 동조하시는 그 방향을 통하여 목적의 세계를 이루어 드리려는 마음에 사무쳐 살았습니다. 그 삶이 역사의 어떤 사람보다 훌륭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를 역사의 대표자로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희생과 순교의 역사과정을 거치면서도 남아질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이냐? 우리의 본심은 이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지남철과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은 언제나 하나님이 가는 방향을 따라가고자 합니다. 이것을 어떠한 외적인 힘으로 제지하게 될 때, 마음은 그 세력을 뚫고 나간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소망하는 역사의 인연이 남아졌기 때문에 그 길을 추구하는 인생들은 필시 마음이 원하는 길을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양심이 재촉하는 본연의 작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작용을 지닌 인간을 어떤 힘으로 아무리 막는다 하더라도 그 순간은 막아질는지 모르지만 결국은 막을 수 없습니다. 역사의 그 어떠한 세력을 가지고도 막을 수 없기 때문에, 역사 속에서 죽음의 고개를 밟고 넘어서 그 뜻을 이루어 나가며 발전한 것이 바로 기독교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어떤 종교보다도 순교의 피를 많이 흘린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이러한 본심을 인간의 힘으로 막을 도리가 없습니다. 왜? 인간의 마음이 선의 방향을 추구하는 한, 인간의 본심이 천륜의 방향에 일치하고자 하는 상대적인 입장에 있는 한, 이것을 아무리 부정한다고 하더라도 부정하는 그 자체가 부정당하는 것이지 본심 그 자체는 부정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종교가 오늘날 수많은 사상계, 문화계의 기원이 된 것입니다. 어떠한 문화든지 종교를 기원으로 하고 있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종교가 마음이 원하는 세계, 마음이 가고자 하는 목적의 세계로 향하는 데 있어서 어느 정도 그 길을 폭넓게 제시했다는 것입니다. 또 종교가 시대 시대에 있어서 마음을 수습하는 중심이 됐고, 역사시대의 방향을 제시하는 중심이 됐기 때문에 종교를 중심삼고 문화가 창건되고 발전되어 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미루어 볼 때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날 우리의 개체를 두고 보면 개체는 지극히 작지만 어떠한 한계권내에 제한받는 인간이 아닙니다. 자신의 모든 책임의 동기가 하나님에게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하나의 세계가 이루어질 때까지, 온 세계가 한 가족의 인연 이상의 세계를 빚어낼 때까지 반드시 그 책임을 다해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