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집: 좋은 사람들 1970년 09월 13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32 Search Speeches

좋은 세계를 이룰 수 있" 사람

두 사람이 있으면 그 두 사람 가운데 어떠한 사람이 선한 사람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선을 무한히 보급시켜 줄 수 있는 존재, 혹은 본성의 한계선을 그릇에 비유한다면 그 그릇을 가득 채우고도 넘치도록 줄 수 있는 주체적인 존재가 선한 사람입니다. 흡수하는 과정에서 불만을 하거나 넘치지 못한 자리에서 싸우는 것은 악이고, 반드시 넘쳐야만 선입니다. 넘치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흡수를 당하게 했던 사람을 주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작전은 주고 빼앗아 오는 작전입니다. 주고 빼앗아 오는 데는 희생시켜서 빼앗아 오는 것이 아니라, 부활시켜서 빼앗아 오는 것입니다. 흡수할 수 있는 두 물건이 있다면,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이 보다 강한 것은 흡수되는 것을 영양으로 보급시켜 주는 것입니다.

과거의 문화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강한 문화는 덜 강한 문화를 흡수하는 것입니다. 선한 사람에 있어서도 보다 강한 선한 사람은 덜 선한 사람을 흡수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강하다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더 줄수 있고 더 보급시킬 수 있는 내용을 지녔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통일교회가 망하느냐 망하지 않느냐, 역사시대의 심판을 받느냐 받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역사시대의 기준을 넘어서 더 줄 수 있는 내용을 가졌다 하면 심판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 혼란의 와중에 있는 이 세계정세 속에서 통일교회가 받아 먹고 산다면 통일교회는 망합니다. 그러나 주고도 남을 수 있는 통일교회라면 틀림없이 세계를 지배할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한 통일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분 개인은 어떻게 해야 되는 가? 더우기나 세계에 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여기에는 혼자서는 안 됩니다.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를 거쳐서 주어야 되기 때문에 국가가 형성되어야 하는 것이요, 민족이 형성되어야 하는 것이요, 종족이 형성되어야 하는 것이요, 가정이 형성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와 나와 관계가 맺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무리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면 결국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좋아하지 못하는 사람은 좋은 세계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이 못 되는 것입니다.

아벨은 어떤 사람이냐? 어떤 환경에서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좋아하는데 누가 먼저 좋아하느냐? 하나님이 먼저 좋아하고 그 환경에서 좋아 해야 됩니다. 이와 같은 내용을 두고 볼 때, 아담 해와의 가정에서 아벨이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서로 원수와 같은 감정을 갖고 참을 수 없어서 대결하는 입장이라 하였을 때 어떠한 사람이 남아지느냐? 여기에서는 복수를 하는 것이 철칙이 아닙니다. 그 복수의 이면에 하나의 조건, 즉 용서할 수 있는 아량이 있다면 복수라는 것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보다 나은 것 앞에는 보다 덜한 것이 흡수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어느 것이 주체고 어느 것이 대상이냐? 보다 나은 것이 주체요 보다 덜한 것이 대상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하는 그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절대자이신 하나님 앞에 절대적인 기준을 세운 사람입니다. 그 절대적 기준에는 세계도 포함되고 국가와 민족 그리고 사회의 모든 제도와 이념이 포함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절대적인 환경을 갖추어야 됩니다. 어떠한 사회, 어떠한 제도권내에서도 나 자신이 줄 수 있는 아량을 가진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선한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자기가 살고 있는 그 시대 뿐만이 아니라 미래에까지 영원히 주고 싶어하는 사람이 선한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그러한 사람이 거룩한 성인이라는 일컬음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줄 것이냐가 문제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라고 했는데 무엇을 줄 것이냐?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진리보다 더 좋은 사랑을 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무슨 사랑이냐?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인류역사상 최후에 남을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그 시대의 민족을 위하여 주고 싶어서 통곡을 하고, 자기 일신의 신세를 망치는 자리에 들어가더라도 한을 품지 않고 주고 싶어하는 사람입니다. 주고 싶은데도 민족이 받지 못하면 세계를 위하여 주어야 됩니다. 자기의 어떠한 이익을 바라고 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명의 부활을 바라면서 주는 것입니다. 생명의 부활을 위해서는 자기의 육신을 희생시키면서 생명이 부활된 미래세계를 맞이하는 소망으로 살아야 하며, 자기의 생명보다도 더 애착을 느끼고 자기의 생명보다도 더 무한한 가치를 느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