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집: 역사적인 비운의 고개를 우리는 넘자 1958년 01월 19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84 Search Speeches

전체의 비운을 책임져야 했던 아브라함과 모세

아브라함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노아의 뜻을 인계받아 400년 후에 믿음의 조상으로 택함을 받은 아브라함도 하늘 땅의 비운의 장벽을 홀로 넘어야 할 사명을 짊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 역시 노아가 걸어간 길을 피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정들었던 고향 산천을 다 버리고 나선 이후부터, 즉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 하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나선 이후부터는 그때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비운의 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 알아야 되겠습니다. 갈대아 우르를 떠난 이후, 혹은 애급을 거쳐 가나안땅으로 돌아온 이후, 롯을 찾아가 만물복귀의 조건을 찾아 세운 그때까지의 생활이라는 것을 그때까지 하늘을 찾아 나가던 인간들이 느끼지 못했던 슬픔의 심정을 홀로 느껴야 했던 것입니다.

여기에는 친척도 없었습니다. 동지도 없었습니다. 친구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전체의 복귀의 역사를 책임져야 할 입장에서 인류의 전체적인 비운의 심정을 아브라함이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비운의 고개가 닥칠지라도, 어떤 고난이 닥칠지라도, 어떤 슬픔이 올지라도, 어떤 어려움과 고통이 뒤따를지라도 남겨진 하나님의 뜻을 이루겠다는 마음을 품고 모든 것을 이겨 나가던 아브라함의 비운의 생애를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제단을 꾸며 놓고 3대제물을 드릴 때까지의 수고는 컸지만 제물을 중심삼은 내적 서러움이 아브라함에게 부딪칠 줄은 아브라함 자신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입장을 다시 회고해봐야 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은 환경적인 비운에 처해 있으면서도 자기가 지금 이런 환경에 처해 있는 것이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역사적인 사명을 대신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했고, 시대적인 사명을 대신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했으며, 또는 미래 후손들의 사명과 천상의 사명까지 대신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것까지는 미처 생각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때까지 남아 있던 외적인 비운의 고개를 넘음으로써 모든 것이 다 해결될 줄 알았는데 당대의 비운은 물론 미래의 비운까지 해결해야 한다는 것은 미처 몰랐던 것입니다. 영원한 인류 역사에 하나의 복귀의 기준점을 세워야 할 아브라함이었는데, 그만 그 일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내적인 비운의 생활을 밟고 올라가 이삭을 헌제하는 자리까지 나갔지만 그것으로 해결되지 않았고 내적인 비운이 오늘날 우리들에게까지 내려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역사적인 비운을 책임졌던 아브라함이 불쌍한 자리에 처해 있었던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그때까지의 인간들이 느끼지 못하던 비운의 심정을 품고 하나님 앞에 책임을 감당하겠다고 몇 번이나 결심하고 맹세하였던가. 그는 자나 깨나, 눈이 떠져있는 어느 한 순간에라도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자기가 제물되어 있다는 것을 망각하는 날에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염려했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대해 슬퍼했고, 하늘을 위해 자신을 바쳐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아브라함의 비운의 심정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야곱을 두고 볼 때에도 아브라함의 터전을 계승하여 하늘의 축복을 이루어 드려야 할 사명을 받은 그 날부터 야곱은 비운의 생활을 했습니다. 하란에 있는 라반의 집에서 21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비운의 생활을 했을 뿐만 아니라 내적으로 에서를 굴복시키는 생활을 했습니다. 여기서 야곱이 가는 길에는 늘 하나의 슬픈 조건이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