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집: 필연적인 길 1972년 09월 03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91 Search Speeches

끝날은 미래를 위주로 하고 정비해야 할 때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하나를 위주해 가지고 어느 하나를 부정하는 것이 그 목적을 향하는 자리에서는 보다 차원이 높은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즉 보다 높은 차원을 가지고 자기를 부정하지 않고는 우리 인간이 바라는 참다운 하나의 목적의 세계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면 종교에도 지금까지 생명을 투입해 나오고, 전생애를 바쳐 나오던 신앙생활을 부정하고 초월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이 끝날에는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국가면 국가, 민족이면 민족을 중심삼고도 그것을 부정하고 초월할 수 있는 보다 차원 높은 애국심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될 것입니다. 사상을 중심삼고도 공산주의 이상, 민주주의 이상 되는 그 무엇이 나와 가지고 그것을 부정하고 나타날 수 있는 운동이 벌어져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인간이 바라는 필연적인 목적을 추구도 할 수 없는 것이요, 그 자리에 도달도 할 수도 없는 것이 아니냐.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자기가 제일 좋다고 하는 것이 자기를 구해 주지 못한다는 결론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대개 어떤 때에 실패하느냐? 자기가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것을 양보하지 않겠다고 하는 자리에서 실패가 벌어집니다. 춘하추동이 있으면 춘하추동을 두고 볼 때, 봄절기가 오는 것입니다. 봄절기가 오면 봄절기에만 고착되고자 하면 이는 일년을 맞지 못하는 것입니다. 봄은 변하여 가고 여름이 찾아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름이 변하여 가고 가을이 찾아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가을이 변하여 가지고 겨울이 찾아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가을과 겨울은 다른 것입니다. 중심이 다른 것입니다. 위치가 다른 것입니다. 그래야만 사시 사계절을 맞을 수 있는 일년의 맛을 알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볼 때 오늘날 끝날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때이냐? 완전히 정비해야 할 때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위해 정비할 것이냐? 어떠한 자리에서 정비할 것이냐? 그 무엇이라는 것은 미래를 위주로 하고 정비해야 됩니다. 그러면 어디에서 정비해야 할 것이냐? 과거에서 정비하는 것이 아니라 이 자리에서 당장 정비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같은 양반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고 말했습니다. 회개란 무엇이냐? 정비하라는 선포인 것입니다.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정비한 자리에 도달해 가지고 필연적으로 넘어가야 할 최후의 장벽이 아니냐. 자, 그러한 때가 어느 때냐? 바로 지금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할 때, 그 천국이 가까운 때가 언제냐? 지금이 바로 그때다 이겁니다. 일생을 두고 그 길을 바라게 되면 일생 동안 그 길을 가는 사람은 그 생애 동안 언제든지 그러한 생활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현재에 파묻혀 사는 사람은 현재의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현재를 극복할 수 있는 미래를 가진 사람이라야만 현재에 있어서 개인적인 심판을 모면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현재 사랑하는 그것에 고착되라고 말할 수 없는 결론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개인이 그러하면 가정도 그러한 것입니다. 수많은 생애노정을 이어 가지고 역사가 지나가기 때문에 역사적 과정에서 그런 입장에 선 것이 인간들인 것입니다. 지금도 그때라는 말이 맞는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를 통해서 마지막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 마지막 때가 예수님 때와는 달리, 그야말로 세계적인 시대입니다. 우리들은 그런 세계적인 종말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