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0집: 하나님 앞에 나를 얽어매자 1961년 02월 15일, 한국 전주교회 Page #190 Search Speeches

제일 낮은 자리-서 하나님-게 얽어매-지" 사람이 참사람

우리의 소원은 하늘과 나를 영원히 붙들어 매는 것입니다. 하늘이 동하면 나도 동하고, 하늘이 정하면 나도 정해야 돼요. 그러려면 하늘이 간 걸음을 나도 가야 됩니다.

그럼 어디서부터 붙들어 맬 것이냐? 통일교회 주의는 춤추는 자리에서 붙들어 매자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웃을 수 있는 그 자리에 가서 붙들어 매자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향하는 주의는 하늘이 눈물 흘리는 자리에 있어서, 핍박받는 자리에 있어서, 외로운 자리에 있어서, 고통을 당하는 자리에 있어서 얽어매자는 것입니다. 그것과 통하는 어떤 사람이 있다 할진대 하나님이 복받고 영광스러운 자리에 참여하게 될 때 떼어 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라는 도의 길은 희희낙락 즐거운 가운데 하늘땅을 대신하여 노래하면서 가는 길이 아닙니다. 도의 길은 먹고 나서도 한숨을 짓고, 입고 나서도 한숨을 짓고, 자기가 갖춘 바의 모습은 늠름하지만 머리 숙여 땅을 보면서 한숨을 짓는 길입니다. 왜? 하나님 앞에 얽어매이고 하나님을 찾아가기 위해서입니다.

세상에서도 뜻이 있고, 생각이 있고, 크나큰 이념을 가진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 사람이 자기 후계자를 선택할 때에는 술 먹는 자리에서 택하지 않습니다. 알겠어요? 춤추는 자리에서 택하지 않아요. 진정 사랑하는 애인을 택하려고 할 때는 댄스홀 같은 데 가서 택하지 않아요. 그건 껄렁패들이라구요. 반드시 낮은 자리에 가 가지고 택합니다. 자기가 높은 인격이 있다 하더라도 낮은 데로 내려가 감방 옷을 입고 땀을 흘리고 추한 모습을 한 자리에 있어서 정성을 들이는 심정의 하나의 기틀을 세워 가지고 택해야 합니다. 고통을 대신하여 싸울 수 있는 장면에 있어서 그 심정에 동반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을 붙들려는 생각을 가진 사람만이 참사람입니다. 네온싸인 불빛이 호화찬란한 자리에서가 아닙니다. 절대 아니예요.

참이라는 것은 웃고 희희낙락하고 궁둥이춤을 추는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참은 어디서서부터? 오늘날 인간들이 제일 싫어하는 데서부터 쌓인다구요. 보라구요. 생명의 기원을 가진 모든 초목 하나라도 그것이 생명체를 갖추기 위해서는 어디서부터? 시궁창 물이 있으면 있을수록 좋다는 거예요. 거기서부터 뿌리를 박아 가지고 그것을 소화하고 그것에서 생명의 요소를 빼내어 자기의 요소로서 갖출 수 있는 내용을 가져야만 완전한 하나의 풀이면 풀의 생명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자기의 생명선을 접수해 가지고 악한 것을 제거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사탄세계에서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은 `아, 그런 길은 가지도 말라' 그럽니다. `아이쿠, 가지 말라' 그럽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에 가게 되면 빠진다고 해 가지고 가지고 말라고 한다는 거예요. 그따위 쫄따구들은 오지도 말라구! 오면 발길로 차서 쫓아 버릴 거예요. 지지리 못난 패들이 예수 믿는 패들이라구요. 기도할 때는 `내 아들 복 주시고, 천당 가게 해주십시오' 그런다구요. 천당? 내가 아는 천당은 그렇지 않더라 이겁니다. 천당을 가기 위해서는 지옥의 길에서라도 `아버지를 거기서 찾을 수 있는 길은 없느냐? ' 하고 머리를 싸매 가지고 정성을 들이며 지옥 밑창에 가서도 하늘의 제단을 쌓기 위해서 충성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천당 간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 줄 알겠어요?

예배당 가 가지고 찬송 부르며 `하나님 아버지, 사랑하는 하나님' 그따위 수작하지 말고, 저 빈민굴에서, 땀을 흘리는 노동판에서, 벌거벗은 허허벌판 가운데서 하늘을 향하여 제단을 쌓고 눈물로 호소하는 무리들이 천당 간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어디서부터? 교회당에서부터가 아닙니다. 천국은 어디서부터? 최고의 사탄굴 밑창에서부터, 더 험한 곳에서부터 소화시킬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그것을 선의 마음으로써 붙들어 얽어맬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자리에서부터 결정된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