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집: 대립된 선악의 세계 1970년 11월 15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56 Search Speeches

악을 청산해야 절대자와 하나될 수 있어

'나'라는 한 사람은 선만을 붙들고 갈 수 없습니다. 이것이 세계적으로 해결되어 가지고 선이 차지하든가, 악이 차지하든가 하게 됩니다. 선이 차지할 때는 살지만, 악이 차지할 때는 망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 세계는 죽느냐, 사느냐 하는 흥망의 길을 달음질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은 역사적 소산물입니다. 가정도 역사적 소산물이요, 국가, 세계도 역사적 소산물입니다. 그런데 그 역사의 소산물 가운데 선의 소산물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내 개체를 두고 비중을 따져 볼 때 선의 소산물이 얼마나 되느냐? 여러분이 살고 있는 생활환경 가운데 선의 소산물이 몇 퍼센트나 되며, 여러분 개체의 인격 가운데 몇 퍼센트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악에 접할 수 있는 요인을 많이 가지고 있느냐, 선에 접할 수 있는 요인을 많이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을 보게 될 때에, 전체가 악에 접할 수 있는 요인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악이 가는 길에 있어서는 교육이 필요없습니다. 교육을 받지 않고도 누구든지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악으로부터 시작된 역사이기 때문에 교육을 받지 않고도 누구든지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악의 길을 가게끔 교육할 필요성이 있어요? 스스로 그렇게 됐기 때문에 오늘날 인륜도덕을 중심삼고 양심의 표준 앞에 가려 가라고 교육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중심한 교육이냐? 선을 중심삼고, 양심을 중심삼고 교육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교육의 표준에 입각한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 악한 것은 배우지 않고도 누구든지 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다 만점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환경 가운데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양심은 언제나 선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선한 사람이 되라고 쉬지 않고 나를 자극시키고, 나에게 권고하는데도 불구하고 선한 내가 되었느냐? 이런 문제를 생각해 볼 때에 오늘도 탄식이요, 내일도 탄식이요, 이해도 탄식이요, 청춘시대도 탄식이요, 중년시대도 탄식이요, 노년시대도 탄식이니, 탄식으로 일생을 마치는 것이 아니냐? 다시 말하면 악한 것으로 끝장을 보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런 결론을 지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악에서 났기 때문에 악에서 꿈틀거리다가 악으로 가는 것이 지금까지 이 세상에 왔다 간 수많은 인간들의 생애요,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류의 행로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종교를 두고 볼 때, 통일교회는 무엇을 하는 곳이냐? 악하게 되라고 가르쳐 주는 곳이냐? 그렇다면 통일교회는 필요가 없습니다. 악은 가르쳐 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악의 길을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잘 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이 세계가 악한 세계이기 때문에 이 악한 세계 전체를 거부하고 선하라고 하는 것이요, 직행할 수 있는 선의 길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 선의 길을 가르쳐 주는 선의 주체자가 누구냐? 누가 가야 할 길이냐? 선의 절대자가 가야할 길이요, 선의 절대자가 주체 될 수 있는 길입니다. 이러한 선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절대적인 길을 그려 가기 위한 생활노정과 생애노정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떠한 생활이 되어야 하고, 어떠한 생애가 되어야 하느냐? 그 생활이 역사과정을 통해서 심판받을 수 있는 생활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과거의 성인 현철들은 그들이 소원하던 그 세계와 인격관을 이루지 못하고 갔습니다. 그러한 과거의 도주면 도주, 종교 지도자면 지도자들 앞에 지도받아야 할 사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왜냐? 그들이 세운 종파를 통해서 그런 세계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사실을 보게 될 때 그렇습니다. 그 이상의 내용을 제시할 수 있는 종교가 아니고는 미래의 세계에 바랄 수 있는 소원의 뜻을 상속받는 종교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문제되는 것이 무엇이냐? 개인에게서 악을 완전히 청산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청산짓고 나서도 악에 접붙일 수 있는 요인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악의 요인을 완전히 구별하여 정리한 입장에서 선의 요인, 즉 본래의 모습과 일체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내가 되어야 선의 절대자와 하나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지옥과 같은 흉악한 사망의 세계에 살고 있더라도 그 양심이 절대적인 선의 주체와 하나되고, 그 선의 요인을 통하여 환경을 포괄할 수 있는 주체성을 가진 선한 사람이라 할진대, 그 개인으로부터 세상은 구별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긍정하고 나오는 종교는 이 악한 세상에 절대적인 종교가 되지 못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것도 물론 잘 들어야 되겠지만, 그 환경 자체가 어떤 결정적인 판결을 내려서 절대적 기원에서 가르쳐 줄 수 있는 가정이 아니요, 학교가 아닌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자체도 악한 세상에 물들어 있는 것입니다. 경계선을 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삼팔선 이북에 있는 입장이지, 삼팔선 이남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나라가 가까와지고 그 뜻을 이루어 나간다 해도 삼팔선 이북을 넘었느냐, 넘지 못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