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집: 해원성사 1970년 12월 25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61 Search Speeches

가장 가치있게 예수님의 탄신일을 축하하" 일

오늘날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을 축하하는 기독교인은 많지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산 생애를 축하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또, 예수님이 돌아가신 이후 2천년 동안의 역사 속에서 그분의 행방을 더듬어 보거나, 지금까지 기독교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수고하신 노고를 두고 축하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을 축하함과 동시에 그분의 생애를 축하해야 되겠고, 그와 동시에 그분이 왔다 가신 이후에 역사과정을 통해서 남기신 업적을 찬양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로부터 그 생애를 거치고 역사시대를 거쳐오신 목적은 뭐냐? 그것은 단 하나, 아버지의 뜻을 완성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태어나셨고, 싸우셨고, 개척의 노정을 쉬지 않고 걸어 나오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을 수 있는 개인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며, 이러한 개인들로 합하여진 가정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며, 이러한 가정으로 합하여진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가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세계가 나오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목적도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것은 이루어야 할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뜻을 이루는 것이 예수님의 보람있는 생애의 목적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들은 어떻게든지 예수님의 뜻, 즉 하나님의 뜻 앞에 모든 생애를 바쳐서 예수님의 거룩한 소원의 실체로서 뜻 앞에 필요한 개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이날을 축하하는 데 있어서 가장 의의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내가 되어 그런 가정을 찾아 가지고 이날을 축하해야 되겠고, 또한 그런 종족을 찾아 가지고 이날을 축하해야 되겠고, 그러한 민족, 그러한 국가, 그러한 세계를 찾아 가지고 이날을 축하해야만 예수님의 태어나신 날을 축하하는 뜻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볼 때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예수님을 대신하여 예수님이 찾아 나오시던 개인과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를 어떻게든지 찾아 아버지 앞에 바쳐 드려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이 거룩한 날을 축하할 수 있는 보람있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어떻게 해서 죽게 되었는가를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가정이 받들지 못하고, 종족이 받들지 못하고, 민족이 받들지 못하고, 국가가 받들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4천년 동안 하나님의 뜻 가운데에서 준비되었던 그 모든 터전이 깨어지게 되었고, 그 터전이 깨어짐으로 말미암아 그 뜻을 세우기 위하여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도 십자가를 지지 않을 수 없었던 이 원통한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뜻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아는 이상 그 뜻을 이루어 드려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거룩한 날을 축하하는 우리에게는 이날이 더욱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려 했지만 실패함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한국 강토와 삼천만 민족을 중심삼고 이 나라를 아버지 앞에 제3이스라엘로 봉헌해 드려야 합니다. 지금이 그럴 수 있는 때이므로 우리가 이 일을 성공하면 예수님이 태어나서부터 그 생애를 거쳐 지금까지 수고의 역로를 거쳐 찾아오신 이 보람 있는 뜻을 종결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갖 정성을 다하여 이 나라를 예수님 뜻에 일치될 수 있는 나라로 만들어 예수님 앞에 바쳐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이날을 축하하기에 앞서서 해야 할 책임입니다. 그러려면 우리의 생활과 환경을 개척하는 데 가일층 노력하겠다고 결의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야만 이날이 보다 가치있는 축하의 날이 되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뜻 앞에 세워질 수 있는 나라를 얼마나 그리워하셨으며, 뜻 앞에 세워질 수 있는 교회를 얼마나 그리워하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또, 뜻 앞에 세워질 수 있는 요셉 가정과 사가리아 가정을 얼마나 그리워하셨겠으며, 뜻 앞에 세워질 수 있는 요셉과 마리아를 얼마나 그리워하셨고 그 형제를 얼마나 그리워하셨겠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가정에서부터 종족, 교회, 민족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의 그리움을 채워 드릴 수 있는 집단이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그렇게도 그리고 바라던 개인과 가정을 이루어 드려야 되겠습니다. 그와 같이 바라던 종족을 이루어 드려야 되겠고, 그와 같이 바라던 교회를 이루어 드려야 되겠고, 그와 같이 바라던 민족을 이루어 드려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사정과 내심을 아는 우리로서 응당히 해야할 책임인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와 같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거국적으로 온갖 희생을 치러서라도 이 일을 계승하여 성취해 놓지 않으면 예수님의 뜻을 완결지을 수 없다는 것을 더더욱 깊이 깨달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