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9집: 하나님이 사랑하고 싶은 가정 1990년 11월 27일, 한국 국제연수원 Page #96 Search Speeches

하나님을 해방해 "려야

참하나님을 알았습니다. 무엇을 중심삼은 하나님? 참사랑을 중심삼은 참하나님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알았지요? 「예」 타락한 이후 지금까지 하나님은 찾고자 원하는 아들딸,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또 투입하면서 찾으려는 그 본성적 아들딸을 아직까지 만나지 못하셨습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타락의 탈을 쓰고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타락한 인류의 거짓부모로부터 타락한 가정, 타락한 종족, 타락한 민족, 타락한 국가, 타락한 세계의 이 50억 인류를 다시 찾기 위해, 인간이 걸어온 인류역사 2억5천만 년의 장구한 세월을 지금까지 사랑의 상대를 찾기 위해 투입하고 계시는 하나님이 있는 것을 안다고 한다면 그것을 아는 사람은 어떻게 할 것이냐? 그걸 아는 사람이 있다고 할 때 어떻게 할 것이냐? 쉴 수 있소?

그분이 내 아버지입니다. 사랑의 절대적인 아버지입니다. 그 아버지가 아들을 잃어버리고 딸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사랑의 대상을 재창조하기 위해서 수고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구원섭리는 복귀섭리요, 복귀섭리는 재창조 역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무슨 재창조 역사냐? 사랑의 실체를 찾기 위한 재창조 역사니 참사랑을 위하여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리며 나왔는데, 그것을 얼마나 유린했어요? 얼마나 죄를 지었어요? 그러니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회개. 예수님이 오기 전에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외친 것입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로 회개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랑길을 찾아 나가려면 회개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아버지가 흘린 눈물은 타락한 인간세계의 부모가 흘린 어떠한 비참한 경우의 눈물과도 비교가 안 되는 것입니다. 억천만사를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눈물을 흘리면서 잊어버리고 또 투입해 나왔습니다. 메시아가 와야 됩니다. 구세주가 와야 돼요. 구세주가 뭐냐? 구세주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이루지 못한 사랑의 한을 풀어 줄 수 있는 대표자입니다. 인간은 그 사랑을 이루지 못한 한을 가진 절망자입니다. 이것을 해원성사하기 위해 오시는 분이 구세주입니다.

무슨 구세주냐? 본연의 사랑을 구해 주기 위해 오는 것입니다. 밥 못 먹는 사람 밥 먹여 주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해방해야 되는 것입니다. 남자를 해방하는 길은 참다운 사랑을 하는 아내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아내가 영원히 사랑하고 남을 수 있을 때 그 남자는 구속이 없습니다. 해방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본질적 중심인 하나님 자체가 지금까지 사랑을 찾아 투입하면서 잊어버리는 입장에 선 하나님이라는 것을, 그런 서글픈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누구도 모릅니다. 문총재 외에는 누구도 몰라요.

통일교회는 여기서부터 출발한 것입니다. 사랑 때문에…. 이 사랑이 원칙적으로 들어맞게 될 때는 천지의 급이 딱 들어맞아 가지고, 기어가 안팎으로 맞아 가지고 물샐틈없이 완전히 우주는 이 세계에서 놀아나는 것입니다. 그거 알았어요? 「예」 그런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을 해방해야 됩니다. 독자로 태어났다가 그 어머니 아버지에게 못을 박고 죽어간 자는 저나라에 가서도 그 어머니 아버지 앞에 범죄자입니다. 영원을 두고 그 마음을 풀어 줄 수 있는 한 날을 회복하기 전에는 해원성사가 안 되는 것입니다. 기쁨의 상봉을 저나라에 가서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슬픈 하나님을, 이렇게 사랑을 위해 투입하면서 잊어버리기를 계속하고 있는 그 하나님을 해방할 수 있는 아들딸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 버티고 앉은 양반들, 그런 아들딸 됐어요? 심각한 문제입니다. 얼굴보고 물어 봐요. 이 눈이 얼마나 그 아버지를 위해 눈물을 하염없이 흘려 보았어요? 밤낮으로 눈물을 흘리고 가슴이 아파서 뒤틀면서 사지를 헤맬 수 있는 내 자신을 본 적이 있어요? 본 적이 없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역사를 통해서 지금까지 그 놀음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불효막심한 죄인상을 무엇으로 지워 버릴 것이냐? 다리를 잘라 일신을 제물 삼아도 메울 수 없는 것임을 생각하고, 자기 생활의 촌분(寸分)을 아껴 가면서 그 한순간의 기쁨이라도 나로 말미암아 해원해 드리겠다고 몸부림칠 수 있는 아들이 있게 될 때는 그를 바라보면서 미래의 소망이라도 가질 수 있는 하나님이 아니겠느냐? 아시겠지요?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