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집: 세계에 봉화를 들자 1970년 01월 11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90 Search Speeches

예수님의 삶과 세례 "한의 삶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해서 세계적인 성인이 됐느냐? 갈릴리 해변가에서 어부를 데리고 다니던 예수님은 어부의 사촌입니다. 사촌도 진짜 사촌이 아닌 의붓사촌입니다. 예수님은 할 수 없어서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에게 소망을 걸고 그들을 데리고 다녔던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스라엘 나라를 전부 돌아다녀 보니까 아주 황량한 곳이었습니다. 좋긴 뭐가 좋아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라고 했던 것, 하나님의 축복을 크게 말하다 보니 그렇게 말했던 것이지요. 이스라엘 전체를 돌아다녀 봐도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은 없었습니다. 어느 한군데도 정 붙일 곳이 없었습니다.

'며칠후 며칠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라는 찬송가를 생각하며 요단강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기 위해서 기대를 가지고 갔습니다. 가 보니 거기에 무슨 용이 올라가던 자리라고 하면서 들어가 보라는 거예요. 그러나 전부다 사막지대로서 모래뿐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한국 강토는 너무나 좋아요. 어디를 가더라도 옥토와 푸른 초윈이 있고, 맑은 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같은 곳에서도 예수님이 세례를 받았는데 우리 한국같이 옥수가 흐르는 이곳에서 왜 세례를 못 받아요? 틀림없이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지금은 그래도 이스라엘 나라가 관개공사를 해서 초목이 있는 푸른 초원을 더러 만들어 놓았지만, 2천년 전 예수님 당시에는 뭐 형편이 좋았겠어요. 그때의 요단강이라는 곳은 오리새끼가 놀아 구정물이 튕기는 곳이었을 것입니다. (웃음)

거기에 세례 요한이 약대털로 만든 옷에 가죽띠를 맨 이상스러운 모습을 하고 들어갔던 것입니다. 그 모습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세례 요한에게 무슨 돈이 있었겠습니까? 남달리 풍채가 좋아서 바라볼 것이 있었겠습니까? 30년 동안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만을 먹고 지냈으니 그 몰골이 오죽해요? 수염은 날 대로 났을 것이고 머리도 길어서 제멋대로였을 것입니다. 며칠 동안 병석에 누웠다 일어난 아주머니들의 머리를 보더라도 부스스해서 보기 흉하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그 시대에 오늘날과 같이 좋은 빗도 없었으니 물만 바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얘기하면 '아이구! 성경에 나온 것을 그렇게 얘기하면 부정하는 것이 아니냐? ' 할 것입니다. 사실이 아닌 것을 얘기해야 부정하는 것이지 사실을 말하는 데 부정은 무슨 부정입니까? 그 주제가 오죽했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런 세례 요한이 설명도 안 하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고 했으니 별 수 없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청천 벽력 같은 그 말을 듣고 누가 따라다녔겠습니까? 어른이 따라다녔겠나 신사가 따라다녔겠나 생각해 보십시오. 그 나라에서 소위 고위층에 있다 하는 교법사들이 따라다녔겠어요? 무명실로 짠 베를 입고 옷 끈에 성경 구절을 쓰고 거룩하게 다니던 제사장들이 따라다녔겠어요? 그런 사람들이 '오! 거룩하신 세례 요한님' 하면서 따라다녔겠어요? 천만에요. 동네 개와 코흘리개 애들뿐이었을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그렇잖아요. 엿장수가 와서 가위를 찔거덕쩔거덕거리며 '싸구려 호박 엿 사려' 하면 사람들이 모여 들지요. 사 먹고 싶은 동시에 구경이라도 하고 싶어서 모여드는 것입니다. 모여드는 데 제일 먼저 동네 개가 왔다 가고, 그 다음에 아이들이 옵니다. 그렇게 해서 시장 거리를 돌아다니면 엿 장수를 따라다니는 무리가 어떤 무리겠습니까? 하나님의 거룩한 아들딸들이겠어요 ?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왜 그랬는가? 세례 요한이 나온 뒤에 예수님이 나오니 '세례 요한의 사촌인 예수가 또 나온다 또 나와' 이런 말이 매일 뒤를 따라다녔거든요. 예수님은 그러한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그런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봅니다. 어때요. 가당한 말이지요?

예수님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고 선포하고 나왔을 때, 이스라엘 민족은 '저것도 세례 요한 패와 같구만. 반 미치광이가 나타나더니 이제는 진짜 미치광이가 나타났구나' 하며 바알세불이 접한 자라고 했습니다. 기독교가 지금까지 모진 고난의 길을 거쳐온 것은 여기에 다 근거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얘기를 하자면 끝이 없으니 할 말이 많지만 이제 그만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