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집: 통일교회의 현재의 입장 1970년 12월 22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53 Search Speeches

뜻을 위해서 선생님이 걸어야 했던 노정

선생님의 그 장면을 보면 예수보다 더 비참하고 서러웠습니다. 사실 그렇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어머니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예수님보다 나은 자리에 서야 합니다.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형제들이 예수님보다 나은 자리에서 선생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교회의 사랑을 못 받았고 나라의 사랑을 못 받았습니다. 이게 한이 라는 거예요. 부모의 사랑과 형제의 사랑을 받고도 교회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나라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교회와 나라에 연결시키는 일이 실패하였기 때문에 사랑하는 부모와 처자식을 버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다시 돌아와야 되었던 것입니다. 다시 돌아올 때까지 성진 어머니가 천년 사연의 한을 극복하면서 하나님과 더불어 참아 나왔더라면 오늘 선생님 가정에 불상사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끝날에는 자기 부모라고 해서 부모를 모실 수가 없습니다. 남한 땅에 발을 들여 놓을 때도 처자를 먼저 만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게 되면 다시 탕감노정을 걸어야 됩니다. 그래서 성진이는 지금까지도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됩니다.

이 길을 다시 닦아 1960년에 성혼식을 할 때까지, 부모의 자리에 설 때까지 성진이와 같이 살 수가 없었습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살아왔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 성진이를 김원필이한테 맡긴 것입니다. 그것은 성진이가 가인적인 장자의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원통한 역사가 벌어진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은 아내가 있어도 아내를 만날 수 없었고, 자식이 있어도 자식을 만날 수 없었으며, 부모가 있어도 부모를 찾아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선생님이 평양에 갔을 때 거기서 한 시간 반이면 고향 집에 갈 수 있었지만 집을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이 감옥에 있을 때 나오기를 그렇게 고대하고 정성을 다하여 기다리던 부모 형제를 찾아가지 못하는 서글픈 탕감의 노정을 걸어가야 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부모를 사랑하고 처자를 사랑하는 것 이상 사탄의 아들딸을 더 사랑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편성하는 데 있어서도 나와 더불어 부모도 그들을 사랑해야 하고 처자도 그들을 사랑하는 입장에 서야만 이들이 종족의 틀이 되는 것이요, 교회의 틀이 되는 것이요, 민족의 틀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잃어버린 것을 다시 소생시켜 찾을 수 있는 기반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길에서 성진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고 통일교인을 사랑했습니다. 선생님은 이북에 있었어도 어머니 아버지를 만나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니 할수없이 갈라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소문이 난 것은 바로 그것에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당하지 못할 심정의 십자가를 선생님이 졌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나라를 잃어버린 서러움, 교회를 잃어버린 서러움도 서러움이었지만, 그것보다도 6천년의 한을 풀기 위한, 가정적인 기반을 못 가졌던 예수님의 한을 풀기 위해서 세웠던 가정적 기틀을 다시 잃어야 하는 입장이었으니 이것이 더 서럽고 분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재차 편성해서 가정적 기반을 다시 세운 것이 현재의 가정입니다. 알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