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집: 전문가 1970년 02월 25일, 한국 통일산업 (구리시 수택리) Page #87 Search Speeches

정성을 다하- 일하라

그러면, 다시 오시는 그 주님은 이 땅에 와서 무엇을 해야 되느냐? 이 복귀섭리의 도상에 있어서 전문적인 내용을 수습해야 됩니다. 역사적인 내용과 시대적인 내용, 그리고 미래적인 내용을 감정할 수 있는 감정사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 시대 환경에 있어서 주체가 되어야 했으며, 또 주체적인 입장에서 상대적 존재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상속해 주어야 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상속해 주시려던 그 사연은 어떤 것이냐? 예수님은 종적인 계승자입니다. 그러나 횡적인 입장에서 그 사명을 계승해 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재림주님이 그것을 재차 재현시켜야 할 책임을 지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가르쳐 주고, 예수님 자신을 가르쳐 주고, 또한 제자의 도리를 가르쳐 주어야 했던 거와 마찬가지로, 복귀도상에 전문적인 책임을 지고 다시 오시는 주님도 하나님에 대하여, 예수님에 대하여, 그리고 자신에 대하여 연결된 내용을 가르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자들은 재림주를 믿어야 되고, 예수님을 믿어야 되고, 하나님을 믿어야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내용을 결속시켜 가지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국가적인 환경, 세계적인 환경이 이루어져야 됩니다. 이것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 6천년 복귀역사입니다. 예수님이 왔다 가신 이후 지금까지 2천년 동안 수난의 노정을 통해 가지고 세계적인 기반을 닦아 나온 기독교도 이것을 위한 것입니다.

오늘의 기독교는 세계를 대표하여, 예수님으로부터 그분의 모든 것을 상속받을 수 있는 전문가, 즉 그럴 수 있는 후계자의 입장으로 나타나야 됩니다. 많은 사람이 아니면, 한 사람이라도 나와야 됩니다. 그러한 기준을 이루기 위해서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나라를 사랑하고, 국가와 더불어 하나되고, 민족과 더불어 하나되고, 그 다음에는 국가 이념을 중심삼고 하나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공인할 수 있는 한 사람을 만나야 됩니다. 그런 준비를 하기 위해서 요셉의 가정을 택했는데, 요셉의 가정이 그럴 수 있는 입장에 서지 못했습니다. 제자 중에서도 전폭적으로 예수님의 전문적인 사명을 인계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이상의 것을 연구해 가지고, 그것을 내가 책임지고 수행하겠다고 나타난 사람이 없었습니다. 요셉 가정에도 없었고, 그 시대의 유대교인 중에도 없었으며, 또한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가 지상에 와서 상속해 주어야 할 역사적인 사명을 글로만 남겨 놓아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명은 글만 가지고서는 상속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심정이라는 것은 글만 가지고서는 연결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떡이 맛있다든가, 혹은 꿀이 달다고 하는 것을 글로는 실감나게 표현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영원한 친구라는 요건을 결정지을 수 있는 근본문제는 실체끼리 부딪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글로써 가르쳐 주는 것은 외적인 표현과 외적인 기준은 될는지 모르지만, 그 전통적인 사상을 안팎으로 전부다 갖추어 `하나 됐다'고 하는 기준을 연결시키기에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 통일교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이면 선생님을 중심삼고 복귀도상에서 전문가가 되려면,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고 싶은 내면적인 분야, 즉 심정적인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 당시에 원수들로부터 수치와 모욕을 당하면서도 책임을 수행하기 위해 뒤넘이치던 입장을 토대로 그 문제를 처리해 나갈 수 있는 전문적인 섭리의 대행자로서 당시의 미완결 부분, 혹은 미완성 부분을 보충시킬 수 있는 전문가의 수준에 올라서 있느냐, 또 예수님 앞에 염려의 대상이 되었던 제자들보다 더 믿을 수 있는 계승자를 발견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환경적으로 갖추어지지 않았을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계승자를 길러야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길러야 하느냐? 전문가가 대하는 태도, 전문가의 연구라는 것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대하여 그렇게 했느냐? 하나님을 대하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사랑했느냐? 그리고 그 나라와 세계에 대하여 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사랑했느냐?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런 상대적인 존재가 없을 때에는 길러야 됩니다. 기를 때에는 어느 기간을 중심삼고 단시일내에 길러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능한 전문가로서의 후계자를 기르기 위해서는 보다 더 마음과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기간은 장기적인 기간이 아닙니다. 제한된 기간내에 이것을 수행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온갖 정성을 다 들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를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완전한 과거 현재 미래의 집약체와 같은 입장에 세워 주기 위해 모든 정성과 심정을 통한 최고의 자리에서 정성을 주입시키지 않으면 안됩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전문가들이 걸어 오던 분야, 즉 학문적인 분야라든가 사업 분야에서 그들이 자기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서 정성을 들인 것 이상의 정성을 투입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오늘날 복귀섭리의 도상에서 그 책임을 다 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