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8집: 사탄혈통 단절과 이상천국 1997년 10월 31일, 미국 이스트가든 Page #23 Search Speeches

통일의 세계를 위한 준비

알고 보니까 그렇게 돌아갔어요. 그렇게 돌아가서 한이 남겠으니, 강원도 정선의 문씨 집 뒤에 묻혀 가지고, 영적으로 문용기 장로에게 '내가 이러이러한 주소의 아무개 집에 묻혀 있다.' 이렇게 현몽을 한 것입니다. 하도 신기하기 때문에 주소를 적어 가지고 편지를 썼는데 그렇다는 답이 왔어요.

그런 영적인 역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애국자의 정신을 가지고 죽어 갔기 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그렇게 현몽한 그 주소를 찾아가서 무덤을 찾아 이장한 것이 지금 파주 할아버지의 무덤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하늘을 위하여서 죽어간 사람은 그 후손이 망하지 않아요. 그런 가정에서 선생님이 태어났어요. 우리 가정이 그런 독립사상을 갖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렸을 적에 겨울밤에 말이에요, 뭐가 쿵쿵쿵 하게 되면 일당이 뒷문으로 들어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그 시간에 밥을 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거든. 그래서 닭을 잡고 국수를 삶는 거예요. 내가 자다 말고 일어나게 되면 손님들이 전부 다 국수를 먹고 밤에 떠나 버린 뒤라구요. 그래서 내가 울던 생각이 나요. 귀한 자식에게는 국수 한 그릇도 안 남겨 주고 이게 무슨 일이냐고 땡깡을 부리던 생각이 납니다. 독립군에 대한 그러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은 것입니다.

그래서 오고 가는 손님, 불쌍한 모든 사람에게…. 우리 집안이 그래요. 동양척식주식회사가 한국의 모든 땅을 빼앗고 사람들을 만주로 이동시키는 정책을 했기 때문에 전부 다 빚을 쓰게 만들어 가지고 갚지 못하게 되는 거예요. 갚지 못하니까 보따리 싸 가지고 만주로 대이동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국도가 우리 집에서 한 1, 2리밖에 안 되거든요. 그러니까 거기를 지나가던 20리 안팎에서는 문 씨네 집이 거지들 잘 대접하고, 오가는 손님들을 잘 대접한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사랑방 하나를 내놓은 것입니다. 어떤 때는 30명 가까운 사람들이 와서 할아버지 혼자 자는데 말이에요, 그 웃방에서 그 사람들이 자고 할아버지 방에까지 내려와서 자고 하는 것을 내가 보고 그랬어요.

그러니 우리 어머니가 얼마나 불평했겠어요? 그래, 형님하고 쑥덕공론하고 그런 거예요. 할아버지하고 작은할아버지가 집을 망쳐 놓고 오고 가는 손님을 대접하는 거예요. 팔도강산의 지나가는 사람 전부 다 밥을 해먹인다는 거예요, 새벽같이. 거기에다 여비가 없는 사람이 있으면 여비도 빌려 주는 거예요.

그러나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왜놈들 때문에 피해 가는 이런 민족을 보호할 수 있는 주인이 없으니, 그런 사상을 가진 우리 집안에서 많은 밥을 먹여 준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내가 많은 밥을 먹이지요?「예.」보따리 싸 가지고 와서 여비가 없으면 여비를 주고 말이에요, 이런 놀음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배고픈 사람에게 밥 먹이는 그러한 조상과 그 집은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초가집이 기와집이 되고, 기와집이 왕터로 옮겨간다는 그런 말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오던 이 모든 역사적인 사실들이 복귀역사를 이룰 수 있는, 나라를 이룰 수 있는 통일의 세계를 위해 준비한 것인데, 해방과 더불어 통일의 세계는 또 갈라진 거예요. 남북으로 갈라졌어요. 만약에 그때 33인 가운데 우리 할아버지가 들어갔다면…. 본래는 우리 할아버지가 33인 가운데 북쪽의 대표자였어요. 대표자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교회 장로가 33인 가운데 참석하게 되어 있던 것인데 이명룡이 대신 들어갔어요.

최남선이 독립선언문을 기초할 때, 우리 할아버지가 거기의 다섯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역사적인 배경을 거쳐 가지고 일본 정부에 몰려 원한의 생애를 거쳐 가지고 흔적 없이 죽어간 할아버지니까, 자기 고향을 잃어버린 한을 하늘이 알기 때문에, 그 길을 찾아 가지고 선생님과 같은 손자에 의해 영광스럽게 고향 땅에 묻히게 되었다는 사실도 고맙게 생각할 것이라구요.

그때, 할아버지가 이박사하고 친구였기 때문에 (이박사가) 정선에 비행기를 보내 가지고 세 번씩이나 모시러 갔더랬어요. 세 번씩이나 모시러 갔다는 거예요. 정치를 하려면 이런 모든 사상적 교육을 누군가가 해야 할 터인데, 제발 도와 달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깨끗한 목사의 이름을 가지고 도와주면 좋겠다고 해서 모시러 갔는데 안 갔다는 것입니다.

그때 만일 가 가지고 자유당을 편성할 때 간부가 되었으면 내가 이렇게 고생하지 않았을 거예요. 인간들이 모르기 때문에, 하늘이 준비한 그런 엇갈렸던 1대 1의 문제가 세계적 분립의 역사를 가져오고, 자유당 국가와 분립될 수 있는 동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할아버지랑 통하게 되면 이박사하고 가깝고 영어도 잘 하고 하니까 이박사의 부인인 프란체스카와도 잘 통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이런 면에 있어서 이기붕이 문제겠어요? 그 이상의 환경을 갖추어 가지고 태평성대의 큰 대문을 열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이 책임 못 한 데 대한 탕감이 아직까지 남아서 그렇게 되지 않았나 생각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