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집: 역사적인 비운의 고개를 우리는 넘자 1958년 01월 19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86 Search Speeches

모세와 이스라-민족이 비운을 넘지 못한 이유

모세가 걸어간 길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브라함 이후의 400년을 민족적으로 탕감복귀하기 위한 사명을 진 모세에게 있어서도, 하나님의 뜻을 대하기 위한 준비의 기간 바로궁중생활 40년이나, 뜻을 실천하는 단계에 처하여 있던 미디안광야 생활 40년이나, 애급에서 60만 대중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향하던 광야노정 40년 기간은 모두 말할 수 없는 비운의 기간이었습니다.

또, 홀로 민족이 모르는 비운의 심정을 품고, 민족을 대신하여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시내산에 올라가 하늘 앞에 담판짓는 일도 있었습니다. 60만 대중을 광야에 내버려 두고 홀로 하나님의 뜻 하나를 위하여 자기의 80여 생애의 모든 것도 잊어버리고, 그때 당하고 있던 슬픔의 환경도 잊어버리고 시내산으로 향하던 모세의 슬픈 심정을 여러분은 체휼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시내산에 올라가 제물의 시간으로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다 잊어버리면서 몸 마음 다 내어놓고 몸부림치며 하늘 앞에 호소하고 간청하던 모세의 비장한 심정을 안 사람이 이스라엘민족 중에는 아무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헤아려 보게 될 때, 노아로부터 지금까지 복귀의 사명을 짊어지고 나온 우리의 믿음을 지녔던 조상들이 슬픔의 생활과 비운의 생애노정을 호소하는 그들의 심정을 아무도 느끼지 못했고, 어느누구도 그를 따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천상에 있는 선지선열들은 자기들이 하늘을 대신하여 싸우다가 남긴 비운과 원한을 누가 책임질 수 있을 것인가 하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 비운의 운명을 책임지지 않으면 그들이 여러분을 참소할 것입니다.

민족 전체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나안복지에 들어가야 할 사명을 짊어지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불평했고, 광야에 주저앉으려고 했습니다. 이럴 때 모세가 한 생명을 들어 전민족의 생명을 구원하는 산 제물로 삼으려고 몸부림친 것을 그 민족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아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친구가 되어 주셨고, 하나님만이 아버지로서 그를 대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그런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40일간 먹을 것을 잊어버리면서도 다시는 아버지께서 슬픔과 비운의 심정을 갖지 않게 해 드리겠다는 책임감을 느껴, 있는 정성을 다해 호소함으로써 이스라엘민족을 부활시킬 수 있는 말씀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기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기쁨을 소개하기 위해서는 남모르는 가운데 배후에서 슬픔의 제물이 된 자가 있었다는 것을 이스라엘민족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이것을 알았던들 광야에서 60만 대중이 쓰러지는 일은 면했을 것입니다. 그후에라도 그들이 모세의 십계명을 받들고 하늘의 서러운 심정을 해원해 드리기 위해 자기들의 몸은 제물될지라도 굽히지 않고 나가겠다는 믿음이 있었더라면 그들은 광야에서 쓰러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세도 외적인 석판은 받았지만 자기 일신을 통하여 후손들의 내적인 비운까지 해원해 주어야 한다는 것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노아도 그랬고, 아브라함도 그랬고, 야곱도 그랬다는 것입니다. 자기 일신에 나타나는 생활적인 환경이 비운적인 것이었지만 자기를 통하여 후손들의 내적인 비운까지 감당해야 된다는 책임은 모세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의 반석 2타로 말미암아 바로 궁중으로부터 하나님의 협조에 의해 인도해 나왔던 이스라엘 60만 대중이 광야에서 쓰러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쓰러진 또 하나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모세의 심정을 몰라준 것입니다. 모세의 절개를 그들이 인계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광야에서 쓰러진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지금 여러분이 서 있는 자리가 옛날 노아가 방주를 짓던 자리요, 아브라함이 제물을 드리던 자리요, 야곱이 21년 동안 양치던 자리이며, 모세가 120년간 수고하던 자리요, 40일 금식하던 자리라는 것을 여러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