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집: 최후의 한때와 나 1970년 03월 12일, 한국 통일산업 (구리시 수택리) Page #301 Search Speeches

하나님이 복귀섭리를 하시" 방법

지금까지 복귀섭리는 개인적인 환경도 그런 환경, 가정적인 환경도 그런 환경, 종족도 그런 환경, 민족도 그런 환경, 국가도 그런 환경을 거쳐 왔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런 내용을 갖추어 가지고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세운 그 가정이 사라져 갔고, 종족이 사라져 갔고, 국가가 사라져 갔다면 어떻게 될 것이냐?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냐? 아닙니다.

그것들이 사라져 갔을 때는 재차 택해 세워서 지금까지 그 국가가 치른 탕감을 일시에 치르게 하는 것입니다. 탕감하는 이유를 깨달은 민족이나 국가가 있을 때는 그 민족이나 국가를 세워서 복귀섭리를 담당할 수 있는 입장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의 복귀섭리를 두고 볼 때, 하나님께서 시대시대마다 최후의 비장한 한때를 맞이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아벨이란 이름을 부를 때마다 하나님의 슬픈 숨소리를 듣지 않으면 안 되겠고, 하나님의 맥박을 느끼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노아 할아버지면 노아 할아버지에 대한 역사가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 현실에 현현된 역사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왜? 영계는 시간성을 초월하기 때문에 몇천 년 전도 오늘과 같은 것입니다. 오랜 역사과정을 거친 것 같지만 그것이 바로 오늘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중심삼은 내용이라든가, 모세를 중심삼은 내용이라든가, 예수님을 중심삼은 내용 등이 시대적으로 볼 때는 역사적인 거리가 있지만, 그것을 환경적으로 다른 입장에서 느껴선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역사의 한계권내에 있는 우리에게는 몇 천년 전이지만 하늘에서는 하루와 마찬가지로 느끼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한 한 순간이 우리에게는 용서할 수 없는 원한의 순간인 것입니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복귀라는 한 맺힌 명사를 필요로 하게 된 것입니다. 복귀라는 원한의 명사가 필요한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것이 제1차적 복귀입니다. 그 과정에 있어서는 가인이 하나님께 한의 못자국을 남겼는데, 함도 그랬고, 제물 실수한 아브라함도 그랬고, 반석 2타한 모세도 그랬습니다. 또한 동방박사와 요셉 가정이 그랬고, 세례 요한과 유대나라의 제사장들이 그랬고,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가 그랬던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두고 볼 때, 하나님께서는 어느 나라를 바라보시고 소망을 가지시겠습니까? 어떤 종교를 바라보시고 소망을 가지시겠습니까? 어떠한 가정, 어떠한 개인을 바라보시며 소망을 가지시겠습니까? 아무리 힘을 내고 아무리 소망을 다짐한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무엇 하나 믿을래야 믿을 수 없는 입장에 계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불신을 해소해 버리고 스스로 해결짓고 넘어서야 하기 때문에 조건을 세워 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높은 단계에 희망의 조건을 세워 놓은 것이 아니라 낮은 단계로부터 희망의 조건을 세워 복귀섭리를 추진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볼 때에 끝날이 되면 될수록 뜻을 대하는 특별한 사명을 짊어진 사람이 나온다 할진대, 하나님께서 그를 믿기까지에는 지금까지 6천년 동안 맺힌 사연, 즉 6천년 동안 불신한 환경의 내용을 전부다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끝날이 되면 될수록 외적으로 종교적인 기반이 넓어져 하나님을 모시는 기반이 넓어지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뜻을 대할 수 있는 사람을 세우기 위해서는 역사적으로 개인이 믿던 신앙의 기준을 중심삼고 본이 될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을 세우기 위한 시련을 거치게 하지 않으면 안 될 아버지의 설움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끝날에는 기독교가 세계적인 판도를 갖춘 환경일 텐데도 불구하고 믿음을 보겠느냐 하신 예수님의 말씀의 배후에는 그러한 내용이 담겨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그 자리는 사랑하고 싶지만 사랑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닌 것입니다. 뜻을 대해 충성하는 모습을 붙안고 당신의 사연을 통고하고 싶지만 이러한 사연을 통고했다가는 더 큰 슬픔을 남기는 입장에 서기 때문에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께서는 낮은 자리에서 복귀의 심정을 넓혀 나오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심정적으로 지금까지 저끄러졌던 6천년의 원한을 풀고 다시금 심정적인 기반에서 아벨을 지도할 수 있는 이상의 기준을 넘어설 때까지 택한 사람을 시련도상에 내놓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비로소 `너는 믿을 수 있다'고 할 수 있는 조건, 즉 `너는 이제 떨어지더라도 더 이상 떨어지지 않는다'는 조건을 남겨 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끝날이되면 될수록 그러한 입장에서 특별한 자녀들을 대해 나오신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