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6집: 통일은 두익사상과 하나님주의로 1992년 02월 02일, 한국 본부교회 Page #119 Search Speeches

앞으로 세계적인 성지가 될 북한의 선생님 생가

우리 고향에 가는데, 헬리콥터 두 대를 준비했더라구요. 그때 14명이 탔나? 20명도 타겠더라구요. 그걸 타고 가니. 280리를 40분에 날아 가더라구요. 편리하긴 편리해졌더구만. 이래 가지고 쭉 가서 국민학교 운동장에 내려서 우리 집이 있던 곳으로 가는데, 거기도 벤츠가 달릴 수 있도록 길을 잘 닦았더라구요. 한 열흘 동안에 그 길을 닦는 데 얼마나 죽었다 깨고 그랬겠나. (웃음) 자기들의 주석이 오는 이상으로 준비해 놓았더라구요. 우리 어머니 아버지의 무덤에도 떼를 입히고, 비석을 해 놓고, 거기에 글자를 새기고 빨간 칠을 해 가지고, 전부 다 수고했더구만. 어떻게 가전(家傳)을 찾았는지 말이에요, 그렇게 해 놓았더라구요.

그리고 집에 가 보니까, 전부 다 페인트 칠을 새롭게 했어요. 그거 다 김일성이 지시했을 거예요. (웃음) 거기에는 토방(土房)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게 높아요. 그 토방은 전부 다 시멘트를 바르고 돌을 쌓고, 마당에는 모래를 깔았더라구요. 잘 해 놓았더라구요. 왕 되는 에서가 동생을 왕같이 모시려고 했다고 할 때, 기분이 나쁘지 않더라 이거예요. (웃음)

회의 당시에 김일성이 하는 말이 `문총재님, 생가에 가셨더랬지요?' 그러길래, 내가 갔었다고, 고맙다고 하니까, 하는 말이 `그곳은 앞으로 유명한 곳이 될 것입니다. 내가 전부 다 알아서 수습하겠습니다.' 그러더라구요. 그러니까 그 옆에 있던 자들이 `예, 알았습니다, 주석님!' 하더라구요. 김일성의 말이 하나님 말같이 그렇게 실효가 있더라구요. 잘 꾸밀 거라.

거기에 내가 한 가지 조건을 달았어요. 옛날에 내가 살던 고향과 같이 만들라고 한 거예요. 그 처음의 모형 대로 여기는 이렇게 하고, 저기는 저렇게 할 수 있도록 다 지시해 놓고 왔습니다. 그렇게 해 놓으면 세계 만국에 널려 있는 통일교인들의 순례지로서, 선생님이 이런 산책을 하고, 이런 나무들을 꺾고, 오르고 내리고 하던, 옛날에 역사적으로 말한 것들을 생생하게 현실적인 무대에서 보고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선생님 대신 나무에 오르고, 선생님 대신 산야를 바라볼 때, 얼마나 마음 보따리가 흐들흐들하게 기뻐질꼬! `이야, 내 고향 천지가 이랬구나! 우리 선생님이 여기서 자랐구나. 음, 공기 맛도 좋다, 물 맛도 좋다. 걷는 맛도 이렇게 기분 좋을 수 있나! 산을 오르는 것도 힘든 줄 알았더니, 이렇게 좋을 수 있나! 만사가 오케이다! 닐리리 동동, 에헤 둥둥 내 사랑아!' 그런 노래를 부를 수 있는 환경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축복받은 무리들은 조상을 찾아 경배를 해야 할 무리이기 때문에, 틀림없이 안 가 보면 안 되게 돼 있어요. 가 볼 거예요? 「예.」 그 대신 한 사람이 천만 원씩은 준비해 가지고 가야 돼요. (웃음) 할 거요, 안 할 거요? 「하겠습니다.」 지금 당장 준비가 되면 말이에요, 백 명이 되면, 세일관광 버스로 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러면 삼팔선을 자유 왕래할 수 있는 기반을 닦는 것은 문제가 안 될 것입니다. 「아멘!」 정부에 보고하라구요. (웃음) 정부에서 `오케이, 문총재의 말대로 하겠습니다!' 할 때는 당장에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거 보면, 김일성을 내 제자같이 만들어 놓고 온 듯이 얘기하지요? (웃음) 그들이 말하는 것같이 김일성은 오래 못 갑니다. 오래 안 가요. 어차피 김일성은 가는 것입니다. 문총재가 김일성보다 8년 아래지요?

내가 건강을 볼 때, 김일성보다 오래 살지 못한다고 보지 않습니다. 이번에 구룡폭포에 올라가는 데도 그렇습니다. 그 모든 북한 패들은 내 뒤에 붙어 왔다구요. `너희들은 내 뒤에서 따라와야지, 앞에 서지 말라구. 기분 나빠. 내가 금강산의 주인이야! 주인이 안내하게 되어 있지, 너희들이 앞에 서게 되어 있어? 절대 내 앞에 서지 말라!' 이렇게 명령을 내렸더니, 윤기복하고 김달현이 그 밑에 있는 사람들에게 `오지마!' 하고 큰소리로 이야기하더라구요. (웃음)

만물상에 올라가는데도 지팡이를 짚고 내가 앞장섰습니다. 그거 사진에도 나오잖아요. 그렇게 선두로 올라가고, 선두로 내려왔다는 말을 듣고 김일성도 기분이 좋아 가지고 `야, 문총재가 나보다 못한 줄 알았더니 어디를 가더라도 얼마나 당당한지, 문총재와 친구하게 되면 앞으로 희망이 있겠다.' 하면서 배포를 가지고 얘기하더라구요. `넘버 원 등산객이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하하하!' 그러더라구요. 이런 말은 신문에서도 못 봤지요? 「예.」 밥 먹으면서 얘기한 것도 하면 좋겠는데, 시간이 없어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