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집: 어찌하십니까 1972년 08월 13일, 한국 청평수련소 Page #123 Search Speeches

새로운 전통의 -사" 오로지 심정세계-서만 벌어질 수 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런 뜻을 어디에 세우려고 하느냐? '하나님은 어찌 하십니까?' 하는 자리에 세우려고 하느냐, '내가 어찌하느냐?' 하는 자리에 세우려고 하느냐? 마찬가지라고요. 예수가 서 있던 자리나 오늘날 우리가 서 있는 자리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예수는 자신도 설 수 있고 하나님도 설 수 있는 그 자리를 남기려니 할 수 없이 희생을 각오하지 않고는 갈 수 없었습니다. 나는 아담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데, 아담이 실수한 것을 누구보다도 더 불쌍하게 여기는데, 그분은 나를 버리지 않았던 것보다 더 딱한 입장에 서지 않았느냐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은 나 때문이 아니고 민족 때문입니다. 민족이 저버린 것이요, 인류가 저버린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인류의 대표로 나를 쳐 주시오. 인류 대신 나를 쳐 주시오' 하는 마음이 있을 때, 여기에서부터 심정의 재유발의 역사가 벌어져 나간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아담 해와가 타락했는데, 타락한 아담에게 동생이 있다고 합시다. 그 동생이 타락한 아담 해와를 하나님께서 쫓아내는 것을 바라 보게 될 때에, '부모여! 그 형님 누나를 내쫓지 마십시오, 내가 그 길을 가겠으니 나를 쳐 주시오'라고 부모를 붙들고 그런다면, 여기서부터 새로운 길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슨 역사냐? 아벨의 역사입니다. '죄를 지은 형제보다도 더 비참한 부모의 마음, 그 마음이 아무리 고통스럽고 억울하더라도 그것을 내가 극복하고 내가 책임지겠으니 나에게 짐을 전부 지워 주시오. 형제들의 십자가뿐만 아니라 부모의 십자가까지 나에게 몽땅 지워 주시오' 하는 아들이 있다면, 그 아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감동의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그럴 수 있다구요. 세상에 어떤 부모에게 불효 자식이 있는데, 그의 동생이 불효 자식을 대신해서 마음 아파하는 그 어버이 앞에 나서 가지고 그 부모가 고통당하는 이상의 고통을 느끼면서 그 형을 불쌍히 여겨 가지고, 그 이상의 어려움이 있더라도 나는 그 어려움을 진심으로 감사하게 받겠다고 하는 일이 벌어지면, 새로운 전통의 역사가 벌어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심정세계에 한해서만 될 수 있습니다. 사리와 이치의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