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집: 기쁨과 영광의 세계를 살아서 싸워 이루라 1962년 07월 15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5 Search Speeches

예수가 슬퍼하신 이유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 지으신 모든 피조물은 하나같이 하나님께서 기쁨을 느끼시기 위해 지으신 것입니다. 특히, 여섯째 날에 지으신 인간은 보다 큰 기쁨을 느끼시기 위해 지으신 실체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러한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역사적인 한으로 남게 되었는가? 누구나 인간의 시조 아담과 해와의 실수 때문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이렇게 역사의 모든 슬픔은 하나님 때문이 아니라 인간 때문에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4천년간 어느 한때도 기쁨과 영광의 모습으로 계셔보지 못하시고 사탄과 싸워 오셨습니다. 그렇게 4천년간이나 수고해 오신 하나님께서 소망하던 실체로 오시고 기쁨과 영광을 돌리기 위한 실체로 오신 메시아 예수였지만, 어느 누구도 그를 4천년 역사의 결실체로, 영광과 소망의 실체로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을 대해서는 기쁨과 영광의 실체였으나, 땅에서는 슬픔의 실체가 되어 30여년의 생애를 슬픔으로 보냈습니다.

영광과 기쁨의 실체로 오셨던 예수는 그의 생애에서 즐거움을 드러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으니, 예수와 하나님의 슬픔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타락으로 말미암아 흑암의 세계가 된 후 4천년을 경과하여 예수를 보냈으나, 그가 다시 슬픈 죽음의 길을 갔으니 하나님의 슬픔이 얼마나 컸겠어요? 하나님께서는 제2차로 큰 슬픔을 맛보아야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을 이 땅 위에서 드러내지 못하고 가는 예수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면목을 세우지 못하는 슬픔보다 영광과 기쁨 속에 계시고 싶으신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지 못하고 가야 하는 슬픔이 더 컸습니다. 그 말 못할 슬픔의 창끝이 예수의 심정을 찔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때문에 예수는 실제로 십자가를 지는 고통을 느끼기 전에 이미 내적인 십자가의 고통을 느꼈습니다.

수많은 군중들이 꿈결같이 사라지고 난 뒤 겟세마네 동산으로 나가 간구해야 하는 서글픈 사정을 제자들에게조차 알릴 수 없었던 슬픔, 뒷날 아버지 앞에 슬픔을 남길 것을 염려하는 예수의 심정을 상상해 보십시오. 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의 발걸음은 최대의 고통스러운 발걸음이었습니다.

내적으로는 하나님의 고통을, 외적으로는 성도들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겟세마네 동산까지 가서 엎드려 기도하던 예수의 심정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예수가 `아버지!' 하고 부른 음성은 하나님의 창조의 심정과, 책임 못한 자신의 심정과, 미래를 염려하며 애타하실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부르짖은 호소였음을 알아야 합니다.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한 것은 자기의 고통을 면키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목적의 성취 여부가 자기 일신에 달려 있기 때문에, 이제라도 할 수만 있다면 이 난관을 피하여 그 뜻을 이룰 수 있게 해 달라는 간곡한 기도였습니다.

사정이 있다면 이 이상의 사정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역사적인 수고의 노정을 알면서 `아바 아버지여….' 하던 예수는 어느 누구보다도 더 처참했고 비통한 심정에 사무쳤음을 알아야 합니다. 수천년 투쟁의 노정이 남아지고 구원섭리가 남아지겠기에 그토록 간구하였던 예수의 심정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예수의 생애에는 기쁨이 없었습니다.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도 기쁨은 못 되었습니다. 예수의 제자들도 소망과 영광의 존재가 되지 못했습니다. 예수가 하나님 앞에 기쁨과 영광의 실체가 되어야 했던 것처럼, 그의 제자들도 예수 앞에 기쁨과 영광의 실체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실체가 되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예수는 마음으로 제자들에게 뜻을 남겨 주고 싶었으나 남겨 주지 못한 것입니다.

성경의 기록을 보아도 예수는 기쁨과 영광 중에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슬픔과 고난 가운데 태어나서 슬픔과 고난 가운데 살다가 슬픔과 고난 가운데 갔습니다. 올 때에는 슬픔으로 왔을지라도 기쁨과 영광 중에 갔으면 영광의 결실체가 될 것이었는데, 소망과 기쁨으로 왔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슬픔으로 갔기 때문에 그 뜻이 아직까지 소망으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