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집: 하늘의 용사 1964년 10월 03일, 한국 대구교회 Page #179 Search Speeches

확실한 신념 위의 원리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역사 가운데 먼저는 진리심판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진리와 화합할 수 있는 세계를 이루기 위해 새로운 주의 사상이라는 것이 나와서, 오늘날 세계의 사조를 움직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념이 나온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주의 사상을 중심삼고는 국가와 민족관념을 초월하지 못합니다. 또 일국의 전통 같은 것도 초월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때에 기독교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 현 사회제도 앞에 머리를 돌리는 오늘의 기독교가 세계를 구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다 때려 부숴야 됩니다. 썩은 것을 알고 근본적인 수정을 해야 됩니다. 이제 전부다 불살라 봐서 타는 것은 버리고, 남은 것은 다시 가꾸어서 새로운 설계를 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최후까지 남아질 것은 진리입니다. 마지막까지 남을 수 있는 하나의 진리가 있어야 됩니다. 진리 가운데에서도 세상의 주의 사상을 전부 규합해 가지고 하나의 진리로 남아질 수 있는 참된 진리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도 교회입니다만, 나는 교회란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할 수 없어 교회라는 간판을 붙인 것입니다. 여러분도 교인들이지요? 하나님이 얼마나 처량합니까? 하나님의 역사가 얼마나 처량한 줄을 여러분 기도할 때 느낍니까? 진정한 교역자라면 이러한 것을 잘 느낄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통일교회의 젊은 남녀가 알아야 할 것은 진리에 입각한 새로운 세계가 반드시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세계에 부합될 수 있는 내적 인격이 진리의 터전 위에 소생되지 않으면 시대의 사조에 쫓겨나갈 것입니다. 진리심판이 있고, 그 다음에는 그 진리를 중심삼은 인격심판이 있을 것이며, 그 다음에는 진리와 인격이 하나 되어 하나님의 심정을 통과해야 되는데, 그것이 심정심판입니다. 끝날에는 이와 같이 진리 심판, 인격심판, 심정심판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에는 예수님의 참다운 말씀, 마태복음을 비롯한 4복음서에 있는 말씀이 아니라 예수님이 말씀하지 못한 참다운 말씀, 마음속에 품고서도 사탄세계의 원수들 앞에 말할 수 없었던, 그러한 말씀이 없습니다. '나는 이것을 위해 살았고 이것을 위해 죽을 것이다' 할 수 있는 참다운 말씀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의 제물로 죽어가서 인류의 죄를 대속했다고 한 것은 바울의 주장이지 예수님의 주장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아니라 바울이 주장한 내용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 앞에 참다운 인격자요 만인류 앞에 참다운 인격자로서, 자기가 출발할 때의 사정과 마음속에 품은 내용을 상속해 줄 수 있는 참다운 신앙의 아들딸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고 싶어했던 참다운 말씀이 어디 있느냐? 성경에도 없습니다. 묵시록 14장의 14만 4천 무리라는 말을 보십시오. 얼마나 애매합니까? 첫째 부활이란 말은 또 얼마나 애매합니까? 이걸 믿고 어떻게 첫째 부활에 참석하겠습니까? 시험 출제관은 이렇게 출제했는데 답은 저렇게 써넣었다면 시험에 패스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생애를 통하여 하고 싶었던 참다운 진리의 말씀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또 예수님은 이 땅에서 그 말씀과 일체된 생활을 하고 싶었으나 그런 생활을 하지 못하고, 즉 그렇게 다 살지 못하고 갔습니다. 그의 심정을 땅에 심어 놓지 못하고 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름 타고 와서 될 것 같습니까? 구름 타고 와서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허망한 소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구름 타고 오지 않는다고 해서 사교라고요? 언젠가는 그 사람들이 사교도로 취급당할 때가 옵니다.

그렇다고 통일교회 문선생이 2천년 동안 수많은 학자들이 연구한 것을 다 부정하느냐? 아닙니다. 알아봐서 사실이 아닌 것만 부정합니다. 영계에 들어가서 샅샅이 뒤져 보아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욕을 먹으면서도 그 내용을 가지고 세계를 대해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말씀은 '그럴 것이다'가 아닙니다. '그렇다'입니다. 진리가 '그럴 것이다' 하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물리나 화학공식에서도 '그럴 것이다' 하는 말은 없잖아요. 진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증적이고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결과가 나와야 됩니다. 통일교회 원리는 '그럴 것이다'가 아니라 '그렇다'입니다. '그럴 것이다' 하던 때는 지나갔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심정이란 것도 막연한 심정이 아니라 구체적인 심정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인격도 구체적인 인격입니다. 막연한 인격이 아니예요. 말씀도 막연한 말씀이 아니라 구체적인 말씀입니다. 이 구체적인 심정과 인격과 말씀은 보편타당성을 가지고 이 현실세계에 부합되고, 이 현실세계에서 영원한 위치를 결정지어 현실세계의 모든 것을 통합할 수 있는 내용이어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