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1집: 모심의 생활 1999년 04월 26일, 한국 한남동 공관 Page #187 Search Speeches

모심의 생활은 천년이 가도 자신을 몰라야

여러분의 생애노정에 있어서 잊을 수 없는 한때를 찾아야 돼요. 그런 것이 어떤 자리냐? 자기가 전도 나가서 외롭고 핍박받고 혼자 눈물지으면서도 '하나님을 위로해야 되겠구나.' 하는 반성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그보다도 잊을 수 없는 자리는 감옥에 가는 것입니다. 자기가 아무런 죄가 없어요. 부모를 봐도 부끄럽지 않고, 자녀를 봐도 부끄럽지 않고, 나라를 봐도 부끄럽지 않고, 하나님을 봐도 부끄럽지 않은데 그런 핍박의 자리에 들어가게 될 때 하나님이 동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동정하는 자리에 들어가서 동정받을 수 있는 자기가 되어 있지 않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민망하고 그 자리를 피해 가지고 하나님이 따라와서 보호해 주는 거예요. 심정의 인연의 생활이 그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받겠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도 돌봐주지 않습니다.

요즘 우리 식구들을 보게 된다면 선생님에게 선물을 갖다 놓고 찾아와서 선물을 왜 안 쓰느냐고 해요. 선생님이 그런 사람이 오면 '저 녀석은 어떻게 돼서 그럴까? 본심의 마음은 누구를 위해서 하는 것이냐?' 하는 거예요. 그 물건이 하나님까지 가는 것입니다. 신성한 예물을 받게 되면 받은 사람이 하늘 앞에 돌려야 되는 것입니다. 바친 사람도 하나님 앞에 돌리는 책임을 못 하고 받은 사람도 하나님 앞에 책임 못 하면 안 됩니다. 선물이 자기들끼리 왔다갔다하면 선물이 커지는 게 아니라 선물이 작아져요. 커져야 됩니다. 그래야 친구들의 우애도 커 가고, 자기와 관계된 모든 환경도 높아지는 것입니다.

모심의 생활은 천년이 가도 자신을 몰라야 됩니다. '내가 통일교회에 수십 년 동안 선생님을 모셨다.' 하면 안 돼요. 그런 사람을 선생님은 좋아하지 않아요. 선생님은 지금까지 할 일을 다 잊어버렸어요. 될 수 있으면 잊어버리려고 합니다. 잊어버리고 가야 할 길이 더 큰 모심의 생활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래요. 왜? 복을 주려니까 말이에요.

가정을 구했으면 국가를 구해야 되고, 국가를 구했으면 세계를 구해야 되고, 세계를 구했으면 천주를 구해야 됩니다. 나중에는 하나님까지 해방해야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탄까지도 하나님까지도 해방해야 됩니다. 그런 자리가 아직까지 안 돼 있다구요. 그 자리까지 가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런 자리에서 일을 못 하게 되면 영계에 가서 죄인의 생활을 해야 돼요.

자기 책임을 못 했다는 부끄러움, 그러니 모험을 하고 있는 거예요. 영계를 전부 다 해방시켜 주는 것입니다. 해방시켜 주고 '내가 너희들은 해방시켜 주었으니 나를 위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영계에서는 하나님을 위하고 나를 밟고 와서 세계를 위하라는, 살리라는 것입니다. 그게 효자의 마음이고 충신의 마음입니다. 자기라는 것이 중심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충(忠)'이라는 말, 중심존재를 중심삼고 하나되겠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중심으로 모심받는 거예요. 중심의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자식이 되어서는 부모를 중심삼은 마음, 부모만을 중심삼은 것입니다. 그 '충' 자가 그래요. '가운데 중(中)' 자를 마음(心)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중심이 뭐냐? 자기 가정의 중심이 부모고, 학교의 중심은 스승이고, 나라의 중심은 왕입니다. 전부 마음 위에 수직으로서…. 이것은 사방입니다. 수직으로 꿰어서 중앙에 서니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게 충신입니다.

선생님이 그래요. 내가 뜻길에서 자랑하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내가 세계적으로 한 일이 많지만 아직까지 할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영계가 남았어요. 땅 위에서 했으면 땅 위에서 정비하고 가야 됩니다.

그래서 이번에 혼자 살다가 처녀 총각으로 죽은 사람, 지상에서 처녀 총각으로 장가도 못 가고 시집도 못 간 사람, 부모의 사랑을 받았지만 그런 사람을…. 또, 낳아 가지고 죽은 아기들입니다. 아기들이 영계에서 자란다구요. 그대로 있지를 않아요. 어머니도 울고불고 생각해 줌으로 말미암아 그 생각하는 마음이 크게 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 죽었다고 슬퍼하는 것이 나쁜 게 아니예요. 알고 보면 죽은 상대가 영계에서 큰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죽었다고 아내가 마음에 두고 슬프게 생각하면 그 혜택을 받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