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0집: 통일교회 활동과 학자들의 사명 1980년 11월 17일, 한국 서울 롯데호텔 Page #174 Search Speeches

과학자대회의 창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과학자 대회가 생기게 된 것입니다. 금년에는 제9차 대회가 마이애미에서 열리지만 말이예요. 9년 동안 그 기반을 닦아 왔다 이거예요. 맨 처음에는 비난 비사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맨 처음에 미국에서 할 때에는-여기 윤박사랑 여기 몇 분도 계시구만-32명인가 모였었죠? 그 대회를 할 때, 우리 같은 사람은 저 말단에 급사 모양으로 가서 앉아 있었지요. 그렇지만 내가 창시자이니만큼 반드시 인사말은 내가 하는 것입니다. 1차 대회를 그렇게 시작해서 끝냈습니다.

그리고 2차 대회를 어디서 했느냐 하면 일본 동경에서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동경대학 교수진들이 실행위원이 돼 가지고 2차 과학자 대회를 전부 다 자기들이 책임지고 했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을 우습게 알았다구요. 그래서 악명 높은 레버런 문을 생각지도 않았다구요. 뭐라고 할까? 그들의 안중에는 뭐 레버런 문이 아주 없었다 이거예요. 그래서 창설자가 나인데도 불구하고 내가 인사말을 하던 전례를 없애고 자기들이 프로그램을 전부 다 만들었어요. 인사는 누가 하고 누가하고….

그래 대회가 내일부터 시작하게 되는데 그 전날 떡 가 보니 그렇게 만들어 놨어요. 그래서 누가 이렇게 했느냐고 하니 실행위원회에서 그랬다는 거예요. 그래서 '실행위원회? 주인 모르는 이런 녀석들이 어디 있어? 너희들 전부 다, 일본 동대(東大)를 중심삼고 일본 학자들 전부 다 이번에 한번 당해 봐라. 이거 틀렸다. 당장에 프로그램을 고쳐라'고 했어요. 내일 아침에 대회를 해야 하는데 하루 저녁에 고치라니 그거 될 말이예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때도 '안 될 게 뭐야? 너희들 레버런 문을 그렇게 알았다가는 안 된다. 본때를 보여 줘야겠다' 하면서 당장에 구보끼 회장한테 기합을 줘 가지고 '돈은 전부 다 내가 댈 테니 고쳐라,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일 대회는 못한다'고 했다구요. 만일 그 대회를 안 하게 되면 일본정부는 국제적인 위신을 상실하게 되고, 일본의 동대를 위시한 모든 학자들의 명예가 완전히 땅에 떨어지게 되는 것을 내가 잘 알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러니 가만히 보니까 판세가 틀렸거든요. 어쩔 수 없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그것을 뒤집어 가지고 새벽 3시까지 인쇄를 했어요. 아침 8시에 대회를 하는 그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새벽 3시까지 다시 인쇄를 한 것입니다. 보라구요. 그들은 전부 내가 악명 높은 사람이라고 해 가지고 무슨 뭐 관이나 쓰고 도복이나 입고 다니는 뭐 이런 사람으로 알았거든요. 그런 레버런 문이 나타나니-밤새껏 싸우다 져 가지고 위신이 다 땅에 떨어졌으니 얼마나 기분 나쁠 거예요?-그 장본인이 나타나니 눈을 찡그리고 뭐 별의별 표정을 다 짓는 거예요. 그때 나는 '이 녀석들, 너희들이 내가 그럴 줄 몰랐느냐? 그런 표정 지어라' 했다구요 그래 가지고 단에 나갈 때는 버젓이 옆을 쓱 보면서 나가서, 단에서는 히죽히죽 웃으며 이야기한 거예요. 이런 싸움을 거치면서 2차 동경대회를 끝냈어요.

그다음에 3차는 영국에서 했어요. 영국을 보면 영국은 신사라구요. 그 사람들은 전부 다 세계적인 경제권을 중심삼아 가지고 지금까지 세계를 움직여 나온 역사적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 사람 알아볼 줄 알더라 이거예요. 주인이 누구인지 잘 알아본다 이거예요. 그래서 3차 런던 대회를 중심삼고 1단계의 정지작업이 끝났습니다. 문제는 런던의 학자들이 아니고 구라파의 학자들이 아닙니다. 미국의 학자들이 문제예요.